독일 대학에 부는 변화의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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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27면

7월 말 독일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 하면 우리에게는 항상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나라다. ‘독일제’라고 하면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이야기하고, ‘독일병정’하면 요령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부흥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나라가 독일이었다. 그래서 1960년대 초 우리 광원(鑛員)과 간호사들이 돈을 벌러 독일로 갔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자금을 얻기 위해 맨 먼저 달려간 나라도 독일이었다. 우리도 독일처럼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했고 국민들도 악착같이 경제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오늘날의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독일은 우리처럼 나라가 두 쪽으로 갈렸었지만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루어냈다. 이처럼 독일은 우리보다 20년을 앞서 가면서 우리에게 좋은 스승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번 방문이 뮌헨에 있는 가톨릭 아이히슈타트-잉골슈타트 대학교와 서강대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독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뮌헨의 서강대와 자매결연한 유명 대학들을 방문하여 독일 대학에서 한 수 배우려는 목적도 있었다.

사실 독일은 60년대만 해도 잘나가는 나라였다. 에르하르트 총리가 이끄는 독일경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의 자율을 최대한 확보해줌으로써 번영을 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에 좌파가 집권하면서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늘어나고 평등주의와 복지국가를 지향함으로써 경제의 활력이 떨어졌다. 실업률은 10%대로 늘어났고 성장은 1%대로 둔화되었다. 여기에다 통일비용도 부담이 되었고 최근에는 세계화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였다.

우수한 두뇌들은 해외로 유출되었고 60년대까지만 해도 노벨상 수상자의 43%가 독일계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슈뢰더 총리가 제3의 길을 모색하면서 시장기능 확대의 길을 모색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드디어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여 정책이 좌에서 우로 선회하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실업률이 낮아지고 성장률은 높아지면서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제 독일 사회 전체가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것으로 느껴졌다.

대학 역시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이 재정을 정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체제에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학생에 대한 대학의 등록금 지원도 이제 5년으로 제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다. 대학총장도 교수들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에서 선임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독일 가톨릭대학만 해도 이사장인 교구의 주교(主敎)님이 내년에는 기업인 출신을 총장으로 선임하고 싶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필자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측근으로부터 듣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독일 대학들에도 이제 서서히 세계화의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교육품질 향상과 국제화가 독일 대학의 주요 과제가 되고 있었다. 교육품질 면에서는 유럽 대학들이 볼로냐 프로세스를 통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었으며 국제화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국제화는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대학사회의 화두임이 동서를 불문하고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국제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류대학 간에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수한 교수진과 교육 프로그램, 재정적 지원 등을 갖추었을 때 해외유학생들이 우리 대학으로 오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의 공과대학이 교수를 채용하려 했으나 40여 명의 응모자를 모두 탈락시켰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정말로 필요한 우수한 두뇌는 한국으로 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여건이 우수 두뇌를 유치하기에 열악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해외박사들을 유치할 때 정부에서 파격적인 지원을 했듯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이제 정부가 고등교육 발전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고급두뇌 유치와 양성은 평준화 논리, 균형발전 논리로는 해결될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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