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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탈레반의 눈으로 인질사건 정리해보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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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02면

탈레반에 납치됐던 인질들이 모두 무사하게 돌아오게 돼 다행입니다. 이제 차분하게 되돌아볼 때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너무 어수룩했고, 탈레반은 잔인하도록 노련했습니다.

탈레반의 입장에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들은 1991년 ‘십자군이 돌아왔다’는 위기 의식에 휩싸였습니다. 제1차 걸프 전쟁 당시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하기 위한 주둔이었습니다. 미군은 지금까지 계속 주둔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개의 성지가 있는 성스러운 나라’입니다.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는 무슬림이면 누구나 순례해야 하는 최고 성지입니다. 성전(聖戰)을 시작했습니다.

탈레반의 동지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과의 성전’을 정식 선포한 것은 1996년입니다. 2001년 9·11 테러는 1994년 실패한 뉴욕 무역센터 폭파 시도에 이은 2차 공세인 셈이죠. 당연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탈레반은 정권에서 쫓겨났습니다.

따라서 탈레반이 미국과 함께 아프간에 파병한 한국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도 성전입니다. 종교적 배경을 지닌 테러 집단은 가장 무자비한 행태를 보이면서도 매우 당당합니다. 극단적 무슬림들은 세계를 ‘알라가 지배하는 땅’과 ‘그 밖의 전쟁터’로 구분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납치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것은 성전의 효과적인 전술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이 기독교 선교 활동과 연루돼 있다니 더 이상 좋은 명분이 없죠.

그래서 피랍 직후 철군과 포로 교환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테러의 기본, 즉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써 협상의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두 사람을 살해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공포감에 휩싸였고, 한국 정부는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철군은 쉽게 해결됐고, 포로 석방은 미국의 강경 입장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다음은 실리를 챙길 단계입니다. 일단 두 명의 ‘아픈 여성’ 인질을 먼저 석방하면서 탈레반 나름의 휴머니즘을 과시했습니다. 협상 결과에 따라 인질의 석방이 가능하다는 시사이기도 합니다.

실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공개된 합의 사항인 ‘철군과 선교활동 금지’는 명분에 불과합니다. 이미 철군은 약속했고, 선교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이미 아프간을 떠났으니까요. 결국은 돈이었을 것이라고 누구나 추정합니다. 우리 정부의 부인과 무관하게 탈레반은 “200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이 돈으로 전력을 강화하고, 앞으로 더 많은 인질을 납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인질이 모두 풀려난 1일 마지막으로 ‘2명을 살해한 것은 카르자이 정부가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미국이 오만하게 버텼기 때문’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책임을 모두 미국과 카르자이 정부에 돌리는 마무리까지 철저합니다.

우리가 빼앗긴 것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종교와 테러, 그리고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경험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으로 배운다고 합니다. 아픈 경험을 되새겨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겠죠.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소속 일부 단체가 탈레반과 정부협상단 사이에 합의한 ‘선교 중지’ 조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니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돌아오지 못한 젊은이의 가족을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고(故) 심성민씨의 아버지 심진표씨를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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