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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운동권 출신 여야갈려 “으르렁”/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5공 기웃” 비판에 “호랑이의 충직한 개” 반격/“한배탔던 사람끼리 싸움” 지적엔 가슴아파
본시 한몸이었다가 문민정부들어 여야로 나누어진 「재야운동권 출신」간의 가시돋친 공방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이다.
아스팔트위에서 함께 최루탄가스를 마시고 숱한 수배와 투옥속에 끈끈한 연으로 뭉쳤던 과거 「사선의 동지」들이 민자·민주로 나뉜뒤 애정만큼이나 거센 증오를 거침없이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발단은 양당의 30일 성명전이다.
민자당은 재야출신인 손학규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연일 독설을 그치지 않는 박지원 민주당 대변인을 겨냥,『5공 기웃세력의 하나』라는 일침을 가하고 나섰다. 이와함께 『민주당은 무책임한 폭로성 발언보다 구인구색의 계파갈등이나 해결하기 바란다』며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민주당에서 박 대변인보다 더욱 발끈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같은 재야출신의 김용석 부대변인.
김 부대변인은 『손 부대변인은 군사정권들의 잔재인 호랑이를 잡으러 민주당에 입당했지만 결국 호랑이의 충직한 개로 전락,재야를 욕되게 하고 말았다』는 인신공격성 논평을 던졌다.
재야출신간의 이같은 설전이 일관성 해프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니었다.
김용석 부대변인은 연세대를 졸업한뒤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보일러공사까지 거친 현장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출신인 손 민자당 부대변인은 노동과 교회쪽을 중심으로 재야의 이론가역할을 했다.
김 민주당 부대변인은 이달 김문수씨가 민자당에 입당하자 『실패한 노동운동가의 종착역이 민자당』이라는 논평을 준비했었다가 발표를 보류했다.
김 부대변인 등 민주당 재야출신들은 지난 정기국회 날치기파동 때는 손학규·박종웅의원 등 민자 재야출신의 대응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언젠가 맞붙게 될 때의 「거리」를 준비해왔던 것이다. 이번 성명전을 계기로 불붙은 양쪽 재야출신의 명분싸움은 보수정치인들보다 강도를 더해나가고 있다.
김 민주당 부대변인은 31일 『민주계 실세였던 이인제 노동장관마저 퉁겨져 나가는 여권풍토에서 김문수씨가 무슨 노동개혁을 할 수 있겠느냐』며 여권 재야의 한계를 주장했다. 그는 『왜 재야끼리 싸우느냐』는 주변의 말에는 가슴이 메어진다는 「고백」이다. 애증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의 김문수위원장은 『각자의 분야에서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게 재야출신의 진정한 의무』라며 『단지 여권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헐뜯는 것은 유치한 구 시대적 이분법』이라는 반박이다.
정치권 일반의 시각은 『민자·민주 야당에 들어온 재야출신 공히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은 내부불안을 적진에 있는 과거의 동지로 돌릴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재야는 다음 총선 때까지는 결국 『친YS냐,반YS냐』로 핵분열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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