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푸는역시] 성(姓)은 시간 개념 … 본관은 공간 개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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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본관(本貫)이란 성(姓)이 생겨난 지역 또는 시조의 거주지를 말한다. 성이 부계 혈통의 시간상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본관은 어느 한 시기 조상들이 정착해서 살았던 거주지를 뜻하는, 즉 공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전주 이씨’라고 하면 전주가 본관이고 이씨는 성이다. 성씨와 본관제도는 계급적 우월성과 신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왕실, 귀족, 일반 지배계급, 양민, 천민의 순으로 수용되어 왔다. 성과 본관은 신분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기제였다.

시조(始祖)라고 하는 것은 어느 성씨의 처음 조상을 말한다. 그 시조에 의해 성이 생겨나고 지속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그 중에 지역을 옮겨 생활하게 된 사람이나 혹은 국가나 가문에 혁혁한 이름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이들은 같은 성씨 내에서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파의 처음 사람을 우리는 중시조(中始祖)라고 부른다.

조선은 후기로 갈수록 수많은 중시조가 생기고 그에 따라 족보가 넘쳐 나게 된다. 넘쳐나는 족보와 함께 사람들은 모두 보다 나은 신분에 편입되고자 열망했다. 결국 조선 말기에는 성 없는 사람이 없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반을 칭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도 이력서에는 본관을 적는 난이 있었다. 신분을 중시하던 관습을 무의식적으로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이력에 본관을 표기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그 자신으로 평가되기보다 어느 집안 혹은 어느 지역 사람으로 파악되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이순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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