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피랍자 가족·교회에 구상권 추진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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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아프간 피랍사태 해결 과정에서 쓴 비용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정부가 피랍 인질과 유가족에게 보상금을 줘야 한다는 정반대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30일 "피랍 사태의 본질과 책임소재를 검토한 뒤 피랍자 가족이나 교회 측에 대해 정부가 쓴 비용의 구상권 행사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복수의 당국자는 "해외여행객 1200만 명 시대에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상권 대상이 되는 항목은 일단 ▶고 배형규.심성민씨의 시신 운구 비용 ▶석방 인질 21명의 항공료 ▶바그람 미군기지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의료 헬기 사용료 등이다. 분당 샘물교회 권혁수 장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석방자들의 귀국 항공료, 시신 운구 비용을 교회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있다. 석방 협상을 위해 아프간에 급파됐던 공무원들의 출장 비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법률적 검토를 했으나 이는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정부의 행정 활동이라는 해석이 많아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피랍 기간(43일 간) 중 연인원 30여 명의 정부 관계자가 아프간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항공료.체재비.행정잡비 등을 합쳐 1억원 넘게 쓴 것으로 추산된다.

인터넷 공간에선 인질 몸값에 대해서도 공방이 뜨겁다. 아랍어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최근 "몸값으로 2000만 파운드(약 380억원)를 건넸다는 소문이 아프간 현지에서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조희용 대변인은 "몸값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은 이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번 피랍사태는 정부가 만든 예고된 자업자득의 인재(人災)"라며 "정부의 직무유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만큼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정욱.정용환 기자

◆구상권(求償權)=채무자의 빚을 대신 갚아준 보증인 등이 요구하는 법률상의 청구권리.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의 경우 피랍 인질을 석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제반 비용을 국가가 우선 지불한 뒤 사후에 당사자들에게 비용 지불을 요청하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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