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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고 비리」 시리즈를 끝내며/특별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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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뚤어진 교육관부터 고치자”/학교가 불신받으면 교육이 설땅 잃어/「대학 가는병」 고쳐야 정상화/건전사학은 전폭적 지원을
□참석자
▲서연호 서울 숭문고 교장(77)
▲임동권 교육부 교육연구장학관(56)
▲김진억 서울 환일고 영어교사(46)
▲이정진 학부모(45)
□사회
▲김석현 사회부기자
상문고사건은 우리 교육의 병리구조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교사와 학부모·학교·교육당국 모두의 뼈를 깎는 자성과 성찰없이는 「교육개혁」이란 과제도 결국 구두선에 불과할 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일선학교,특히 사립고교의 긴급진단과 처방 제시를 위해 17일부터 「사립고 비리진단」 제하의 기획을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연재를 마치며 교육의 이해당사자라고 할 학부모·사립고교장·교사·교육당국 관계와 한자리에 모여 우리 교육이 처한 위기와 해결방안은 과연 무엇인지를 좌담을 통해 조명해본다.
사회=상문고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습니다. 보도가 나간 직후 신문사로 쏟아진 수백통의 독자전화는 일선 학교,특히 사립고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과 불만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나를 짐작케 했습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를 이제 더이상 방치하다가는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과 공감대도 넓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먼저 이번 사태를 보는 각자의 입장을 말씀해 주시지요.
서 교장=사학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선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학부모님들이 느끼셨을 분노와 경악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번 일이 저희 사학뿐 아니라 우리의 교육 전체에 새로운 반성과 결심의 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 교사=교육계에 있는 사람들은을 모두 얼굴을 들 수 없게 됐어요. 상문고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교사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번 기회에 말뿐이 아닌,구체적인 교육개혁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학무모=재수생인 아들이 공부할 맛이 안난다고 투덜대는 걸 보며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아들이 자기가 받은 미술성적을 믿을 수 없다더군요. 학생들이 교사를,자식이 부모를 못믿게 된다는건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임 장학관=감독기관에서 비리를 막지 못했고 학생·학부모들에게 상처를 준데 대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자라고 있고 또 교육을 포기할순 없는 것입니다. 교육계 개선의 계기가 되도록 힘을 모아야겠지요.
사회=일부에선 내신조작·찬조금 징수가 상문고뿐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일반화된 비리라고들 합니다.
김=교사로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 시험을 보자마자 채점해 공개하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되면 학생이 곧바로 이의를 신청합니다. 교사도 전혀 실수가 없다고 말할순 없지요. 만일 이상이 발견되면 곧바로 진정카드를 작성하고 정정사유를 기록해 둡니다. 또 모든 학생들 카드를 컴퓨터로 전산처리하니까 추후 정정은 불가능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상문고사건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이 모든 학교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임=찬조금은 92년 9월 이전에는 육성회를 통해 거두는 것이 음성적으로 인정됐었지요. 하지만 그뒤부터는 학교별 징수는 전면 금지됐고 시·도교육청별로 기탁하면 교육청이 학교에 전달하게 돼있어요.
이=그러나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돈을 거둔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요. 신학기가 되면 반별로 할당금이 정해진다는 거죠.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모두 할당금은 아니지만 촌지를 요구받은 적이 있어요.
더욱이 찬조금이 학생들을 위해 써졌다면 억울하지나 않겠어요. 상문고처럼 교장 개인의 빌딩을 짓고 미국에 별장을 사는데 사용된다면 억장이 무너지는 일 아닙니까.
서=일부 학교에서 불법찬조금을 거둬온 것은 설립자나 교육자들의 양심·인격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재정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사학의 경우 학교시설 개·보수 등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요. 정부지원도 교사들의 인건비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고….
이=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높아져야 한다고들 하지만 학부모들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많아요. 솔직히 어떻게 믿습니까. 아들의 담임교사로부터 음악·미술·체육교사에게 로비를 해야 한다며 돈을 갖고 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부했지만 정말로 돈을 가져가면 성적이 달라지는거 아닌지 지금도 의심스러워요.
더욱이 일부 학생들은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해 서로 과목을 분담해 공부하고 시험때는 공공연히 커닝을 하고 교사들도 묵인한대요. 이게 과연 교육적인 겁니까. 내신반영이 높을수록 부작용은 커져요.
서=그런 내신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한 겁니다. 내신이 없으면 어떻게 학생을 평가합니까. 대학본고사에서 국·영·수를 잘하는 학생이면 다 우수한 겁니까.
임=대학입시가 마치 교육의 모든걸 규정하는 것처럼 잘못 인식돼 있지만 고교교육은 대입과 상관없이 자체적인 교육목적이 있는 겁니다. 대학을 못가는 학생은 고교에 다닐 필요가 없는게 아니잖습니까. 내신은 학생이 고교에서 각 과목에 대해 얼마나 학업성취를 올렸고 특별활동·출석 등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서=무조건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과열교육열도 문제겠지만 사회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어요. 대학을 안나오면 사람 대접을 안해주려 하니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대학에 가라고 하지 않겠어요.
이와함께 사학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의 모든 사학이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학생들로부터 받는 등록금으로는 도저히 운영히 안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보조가 없으면 교사들의 월급도 주지 못할 실정이고요. 이번 기회에 비리를 저지르는 사학은 설립자와 교장이 학교를 다시는 운영하지 못하게 몰아내고 대신 건전한 사학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이=거의 모든 사학이 적자운영을 하고 있다는건 몰랐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과외비에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만일 학교에서 모든 교육이 충분히 이뤄진다면 왜 과외를 시키겠어요. 콩나물 교실에서 학원강사보다 실력없는 교사에게 배운다는 불평을 아이들로부터 들으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과외를 안시킬 수 없어요. 학교가 좋아지만 사교육비 절반만 들여도 얼마든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가 있을텐데….
임=정부도 사교육비를 공교육비로 전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 비리를 저지른 사학에 대해서는 엄단할 것임을 분명히 다짐합니다.
이=새정부는 GNP의 5%를 교육에 투자한다더니 결국 유야무야 되는 것 같아요. 학부모들 심정으론 과외를 안해도 된다면 정상적인 세금이 교육에 투자되는걸 마다할 까닭이 없습니다. 교육개혁을 교육부가 아닌 정부차원에서 해야됩니다.
사회=이제 우리 교육의 나아갈 길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서=사학이 전체 중·고교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볼때 사학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합니다.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만 학교를 불신하고 부정하면 우리 교육은 갈 곳이 없습니다.
특히 대학입시는 중·고교교육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입시제도를 만들까를 정말 신중히 고민해야 합니다.
이=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교육비리는 제도도 문제지만 학부모 개개인의 교육관도 크게 잘못됐기 때문이란걸 절감합니다. 학부모 스스로가 과연 무엇이 교육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언론도 학벌을 강조하는 보도를 하지 말아 주세요. 입시 때마다 시시각각 경쟁률을 보도하는 것도 그렇고,서울대 수석이 왜 번번이 사회면 톱을 장식해야 합니까. 대학에 들어간 것보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워 사회에 나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정부도 열악한 교육환경을 더이상 방관하지 말고 교육투자에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둬 주십시오.
김=교육은 교사만으론 이뤄지지 않습니다. 학부모는 이기심을 극복하고,교사는 양심을 회복할 때만이 교육은 굴러가는 겁니다. 누가 누구를 탓하기 앞서 서로 애정을 갖고 감싸주며 우리에게 주어진 교육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완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정리=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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