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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개정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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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마땅/한영우 서울대 교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데 다양한 사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학문적 입장에서 바람직한 현상 아닙니까.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면 역사적 실체에 보다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겠지요.』
서울대 사학과 한영우교수는 해석의 차이가 존재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교과서에도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보다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준다는 취지에서 여러가지 해석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교수는 「제주 4·3사건」이나 「대구폭동사건」 등은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들로 학계에서 정설화돼있지 않고 개념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를 위해 현재의 역사교과서 분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5천년 역사를 기록한 우리 교과서가 3백년 역사에 못미치는 미국의 역사교과서 분량의 절반정도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현재의 국정교과서제 대신 과거처럼 검인정교과서제를 도입,다수의 교과서를 학교에 따라 선택해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러나 당시 사건들의 성격규명에 대한 논란보다는 그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4·3사건이나 대구폭동사건 당시 관련자들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이 상당수 있으나 그동안 학계에서 이들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회고담을 청취하는 등의 실증적 작업이 거의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개편시안은 「민중사관」에 편향/박성수 정문연 교수
『10월 폭동은 당시 남로당이 중심이 돼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민족세력에 타격을 입히려 영남일대의 군중을 선동해 일으킨 대규모 폭동이며 그후 폭동 지도자들이 모두 월북,포상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인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항쟁이라고 가르칠 수 있습니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성수교수는 새 국사교과서 개편시안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계급론적 민족해방투쟁사로 규정한 민중사관에 편향돼있음을 우려하고 이를 교과서에 싣는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번 시안이 용어개편 문제뿐 아니라 전체적 흐름에서 인민대중의 혁명운동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애국지사들의 독립투쟁은 가볍게 취급하는 등 편파적으로 기술돼 있다고 지적했다.
동학혁명을 반봉건·반제국주의적 농민전쟁으로 평가하면서도 의병전쟁은 단순한 항일운동으로 비하되고,안중근의사 등의 항일투쟁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고 있는 시안은 북한의 조선전사,중국의 혁명사관에 기초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시안에 따르면 구한말의 반봉건·반제투쟁이 일제하에서 민족해방투쟁으로,광복이후에는 민중들의 민주·민족항쟁으로 계승된다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저버린 행위이므로 결국 한국전쟁으로 징벌을 받게 된다는 해석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같은 편파적 시각으로 역사를 기술한다면 우리의 교과서는 국적을 상실하게 되고 싸움투성이의 역사속에서 후세들에게 우리의 암울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끝없는 민중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폭동 「소요」로 보아야 무난/심지연 경남대 교수
해방공간의 정치적 사건에 대해 연구해온 경남대 심지연교수(정치학)는 『논란이 되고 있는 두 사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절대 부족한 현 단계에서 개념규정은 무리가 있으나 「대구폭동」은 「소요」로 표현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심 교수는 『「대구폭동」과 뒤이어 확산된 「10월사태」는 이에 대한 본격 저작물이 단행본 3권에 불과할 정도로 현대사 연구의 공백기로 남아있는 사건으로서 계속 연구력이 집중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91년 『10월항쟁 연구』란 저서를 발표한 심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시 소요사태의 지도부는 인민공화국을 수립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좌익계열이었으며 이들의 전략 전술에 따라 소요가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것. 반면 소요에 참여한 다수의 일반시민과 농민들은 일제 때부터 누적돼온 제반 실정과 모순에 대한 항거의 의미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따라서 현행 교과서의 「폭동」 표현을 당시 미 군정보고서에 나오는 용어인 「시민소요사태」(civil disturbance)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45∼48년의 모순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때 「4·3항쟁」과 같은 민감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확한 개념규정은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또 『현행 교과서의 역사기술이 우리 역사를 끊임없는 외침·탄압의 반복으로 기술하고 있어 앞으로의 개편작업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된 용어채택 합의 거칠 것/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현대사부분 시안을 작성한 서중석교수(성균관대)는 용어선택문제에 대해 『아직 학문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두 사건의 성격에 관한 토론을 거쳐 합당한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과서 개정작업에서 굵직한 사안들이 많아 이 부분에 대한 시안 연구위원들간의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문제의 「10월항쟁」 「제주 4·3항쟁」 표현에 대해 『시안을 작성한 취지는 현행 교과서에 누락되거나 편향된 이들 사건에 대한 설명을 개정교과서에 포함시키자는 의미였으며 반드시 용어를 「항쟁」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닌데 발표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대구에서 불붙는 사태가 영남·호남·강원지방으로 확산됐고,당시 미군정의 실정에 억눌리던 농민의 자발적 참여과정을 볼때 단순한 「폭동」의 개념으로는 이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며 비교적 연구가 진행된 「4·3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 냉전적 사고가 반영된 「폭동」보다는 커밍스의 저서에서 표현된 「소요」(uprising),가치중립적 용어인 「사태」,국내 학자들의 최근 저작물에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는 「항쟁」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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