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해인 수녀 “테레사 편지도 신을 부정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맑고 고운 언어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해온 이해인(62·사진) 수녀가 자신도 신의 존재를 회의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28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한 이 수녀는 “수도공동체 안에서 40여 년간 수도 생활을 해왔는데 내 한계를 느끼거나 하느님 혹은 동료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때 문득 ‘정말 그분이 계실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었다”며 “성인들의 고백록을 읽으면서 극복해왔고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모든 것을 섭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비바람을 견뎌 한 그루의 나무가 더 성숙하게 자라듯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라며 시련의 극복을 강조했다.

이날 방송은 최근 공개된 테레사 수녀의 비밀 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테레사 수녀의 10주기인 9월 5일 발간될 『마더테레사:내게 와서 빛이 되라(Mother Teresa:Come Be My Light)』에서 테레사 수녀는 고해 신부에게 보낸 40여 통의 편지에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다”며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수녀는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혼의 어둠을 경험한다”며 “(편지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테레사 수녀 본인의 존재론적 고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석했다. 또 “수십 년간 빈자들에게 헌신적 봉사를 하면서 스스로 신처럼 추앙을 받은 마더 테레사는 신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녀는 또 테레사 수녀의 신앙을 비판했던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재비판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무신론자 히친스는 책에서 “테레사 수녀도 종교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계속된 그의 신앙고백은 자신이 빠진 함정을 더 깊이 파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 수녀는 “(히친스의 비판은)자기 좋을 대로의 아전인수격 고백”이라고 일축했다.

이 수녀는 “신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테레사 수녀가 평생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며 “1994년 일주일 정도 (데레사 수녀가 만든) ‘사랑의 선교회’에 머물며 그에게 ‘신앙과 수도생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서 회의나 불안을 느낀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테레사 수녀는 ‘하느님이 계신데 내가 왜 걱정하는가. 모든 것은 그분이 해결해준다’고 단호하게 답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항간에서 40여 통의 편지를 가지고 테레사 수녀의 신앙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랑과 기도의 시인인 이 수녀는 1964년 수녀원에 입회해, 76년 종신 서원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는 200만 부 넘게 팔렸으며, 많은 시와 수필을 통해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표현해왔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

이에스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