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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 저격수들 폭탄주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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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왼쪽 줄 앞에서 셋째)가 2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이명박·박근혜 캠프의 주축 멤버였던 초선 의원 9명을 초청, '폭탄주 오찬'을 함께했다. 이 후보 측의 핵심 측근인 정두언 의원(왼쪽 맨 앞줄)과 그 바로 옆에 앉은 유승민 의원 등이 건배하고 있다. 이 후보 비서실장이던 주호영 의원(오른쪽 앞에서 둘째)과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이던 유정복 의원도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오른쪽 맨 앞은 '이명박 저격수'로 활동했던 이혜훈 의원. [사진=조용철 기자]

"진 사람은 털어버릴 것도 없다."

27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이제 툭툭 털어버리자"고 하자 이혜훈 의원이 샐쭉한 표정으로 한 말이다. 강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캠프의 주축으로 활동했던 초선 의원 9명을 불러모아 점심식사를 대접한 자리에서 나온 대화다.

이날 강 대표의 초청에 응한 의원들은 이 후보 측 박형준.정두언.주호영.진수희 의원, 박 전 대표 측 곽성문.유승민.유정복.이혜훈.최경환 의원 등 9명이었다. 나경원 대변인과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초청받은 사람 중 이 후보 측에서 정종복 의원이, 박 전 대표 쪽에선 김재원 의원이 불참했다.

강 대표는 "두 진영이 화합해야 한다"며 '화합의 폭탄주'를 직접 만들어 돌렸다. 하지만 이들 초선 의원들은 간간이 강 대표가 머쓱해질 정도의 '뼈 있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전언을 토대로 한 대화록.

▶최경환 의원="(져서)밥 먹을 데도 없는데 불러줘 고맙다."

▶강 대표=(농담조로)"옛날에는 진 쪽은 한강 모래사장에 앉고 이긴 쪽에서 망나니가 큰 칼을 들고 '후 후' 했을 것이다."

▶최 의원="누가 망나니 역할을 하나. 정두언 의원인가."

정 의원에 대해선 대학 동기(서울대 상대) 사이인 유승민 의원도 할 말이 많았다. 두 사람은 경선 기간 내내 각각 이 후보와 박 전 대표 측으로 나뉘어 상대후보 공격의 선봉에 섰던 맞수다. 유 의원이 정 의원을 향해 "표정관리 좀 하고 다니라"며 농을 건네자 정 의원은 빙긋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한반도 대운하 논쟁과 검증 공방 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돌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경선 때 '이 후보 재산 8000억원설'을 발설, X파일 공방의 단초를 제공했던 곽성문 의원도 발언 기회를 얻었다.

▶곽 의원="언론사 사장(MBC-ESPN 대표)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안 할 막말까지 하면서 (박 전 대표 운동을)했는데 패배했고 허탈하다. 패자는 말이 없고 이긴 쪽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반성문을 쓰라면 쓰겠고 대구시당위원장도 내놓으라면 내놓겠다. 그러나 (이 후보 쪽이)전리품 챙기듯 하면 되겠느냐."

불고기를 안주로 해서 소주 섞은 폭탄주가 대여섯 순배 돌아가면서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의원들은 상대 진영끼리 서로 짝을 이뤄 폭탄주를 마시기도 했다. 몇몇 의원은 포옹을 하기도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발에 붕대를 감고 나타난 진수희 의원도 화제에 올랐다.

▶진 의원="어제 이재오 최고위원과 산에 갔다가 발목을 다쳤다."

▶유 의원="그러니까 이재오 최고 좀 그만 따라다녀라."

▶강 대표="이.박 진영이 결국 이심전심 아니겠느냐."

▶유 의원="이심전심이란 '이명박 후보 마음이 (이 후보 쪽으로 간) 전여옥 의원 마음'이란 뜻이냐."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오늘 모임에 왜 초대 안 하느냐고 따진 의원도 많았다."

▶이혜훈 의원="(이 후보 측이 만든) '살생부 5인방'만 초대한 거 아닌가."

폭탄주 오찬은 강 대표가 "우리끼리 고소한 것을 다 취하하자. 검찰은 결국 야당 흠집만 낸다. 아름다운 승복을 한 경선을 이뤄낸 게 꿈만 같다"며 화합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런 오찬 분위기는 새 원내대표 선출을 위해 열린 오후 의원총회에서도 이어졌다. 김형오 원내대표가 1년여 임기를 마치고 퇴진하는 자리인 만큼 총회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 일부 의원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후보 측으로 분류되는 안상수 의원이 단독 출마해 새 원내대표에 당선된 데 대한 불만이었다.

이 후보 캠프 소속이었던 박찬숙 의원이 의총 사회를 보면서 밝게 웃자 박 후보를 지지했던 송영선 의원은 "웃지 말고 하라. 우린 안 행복하다"라고 쏘아붙였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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