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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외압'폭로 후 종적 감춘 장윤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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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국대 전 재단이사였던 장윤(56.강화 전등사 주지.(右)) 스님이 자취를 감췄다. "(가짜 학위 의혹이 제기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를 문제 삼지 않으면 동국대 이사직에 복직시켜 주겠다"는 변양균(左) 청와대 정책실장의 회유성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부터다. 그는 24일 오전 7시 "서울로 간다"며 전등사를 나섰다. 이후 전등사는 물론 조계사 총무원, 검찰과 변호사에게 모두 연락을 끊었다.

회유성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로 지목된 변 실장도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26일에도 휴대전화에선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란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언론과의 접촉을 끊은 것을 놓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왜 잠적했나=휴일인 26일 많은 신도와 관광객이 강화도 전등사를 찾았다. 그러나 대웅전 옆 주지 장윤 스님이 거처하는 별당으로 향하는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다. 그는 24일 첫 언론 보도를 보고 '불같이' 화를 내고는 전등사를 떠났다고 한다. 전등사 관계자는 "장윤 스님은 언론 보도 이후 '이런 기사가 왜 나갔는지 모르겠다'며 노발대발했다"고 말했다. "관련 사실을 물어볼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전등사 주변에서는 외압 의혹이 일제히 보도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진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장윤 스님이 잠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정아씨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이 끝났으니 곧 출석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장윤 스님이 검찰에 나올 경우 언론에 집중 조명되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동국대 관계자는 "현 정권 실세 중 한 명의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 부담감이 없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권력을 건드렸다는 생각에 잠시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정아씨 문제 언급 없었나=변 실장도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더는 말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변 실장의 장윤 스님 회유 의혹에 대해) 조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선 주장이 있었다고 청와대 직원을 불러 조사할 순 없다"고 말했다.

변 실장은 자신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본인이 직접 해명하더라도 의혹만 증폭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를 제기한 장윤 스님이 잠적해 버린 상태에서 자신의 해명이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런 대응이 오히려 의혹을 키우고 있다. 회유성 압력 의혹이 불거지자 변 실장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7월에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동국대 내의 갈등을 확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의혹이 동국대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시점이다. 변 실장이 장윤 스님과 만난 것으로 알려진 날(7월 8일) 하루 뒤부터 언론이 신씨 관련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점에서 신씨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권호 기자, 강화도=이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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