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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 뜨고 해는 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18) 그렇구나.엄마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오빠가 돌아올 것을 믿고 있구나.그렇겠지.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어.
『그런데 엄마.아버지가 그러는데요,일본이 곧 망한대요.』 『영감이 미쳤나 보다.』 송씨는 말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말아라하듯이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쑤신다.
『그 아저씨가 그랬대요.일본이 지금 망하고 있는 중이래요.』『망하겠지.세상에 어디 열흘 붉은 꽃이 있다든.달도 차면 기우는 거고… 아무려면 왜놈들이 천만년 저렇게 기승을 떨기야 하겠니.』 『그런 소리가 아니고요.지금 세상 돌아가는 게 엄마나 내가 아는 거 하고는 다르다니까요.』 『뭐가 어떻게 달라.일본이 망할 거라면서? 내가 뭐 네 말이 틀리다는 게 아니다.이 에미도 일본이 망할 거라지 않니.』 『그게 아니고 엄마.』 『안이면 뒤집어서 거죽 하거라.』 『답답해.내가 말을 말아야지.
』 여물이 끓으면서 부엌 가득히 김이 피어올랐다.구유에 목을 비벼대면서 소들이 요령을 딸랑거린다.
은례는 조그만 갈퀴를 무쇠솥에 넣어 여물을 뒤집어 놓은 뒤 구박을 집어들었다.여물을 구박으로 듬뿍듬뿍 퍼 소 구유에 부어주고 있는 은례를 바라보다가 송씨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러니까.그 중국 땅에서 왔다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거냐? 일본이 망할 거라구?』 『말할 땐 딴소리만 하다가….』 『느이 아버지 얘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그거지?』 『그렇다니까요.』 『그러면 이게,무슨 일이 나도 크게 나는 모양이구나.일본이 망하면 그냥 망하겠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건데,왜놈들이 숨이 넘어가면 그냥 넘어 가겠어.
안 할 짓,못할 짓,별 발악을 다 하지 않겠냐구.이래저래 그저힘 없는 조선 사람만 죽어나게 생겼구나.』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밀어올리며 은례는 여물을 먹고 있는 소를 바라본다.
『잘 커야한다.새끼도 쑤욱쑤욱 잘 낳고… 소가 기름이 자르르흘러야,그래야 되는 집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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