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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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16) 『은례냐?사랑 부엌에 있는게 너야?』 송씨가 문을 열고 나오며 물었다.불쏘시개 할 관솔을 들고 가던 은례가 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네,엄마,저예요.』 『아니,어째 더 자지않고 추운데 나와서부스럭거리고 있냐?』 『소죽이나 끓이려고요.제가 더 퍼주고 들어갈테니까 아버지 나오시지 말라고 하세요.』 『네가 그렇게 부지런 떨지 않아도 소 굶지 않아.원 춥기는…날씨가 오늘도 기승을 부리네.』 『들어가세요.』 『들어가기는…나도 어디 잠이 와야 말이지.』 송씨도 마루를 나와 사랑 부엌으로 내려섰다.소죽을 끊이는 가마솥에는 어제 저녁 물을 길어다부었고 여물도 채워놓았었다.
은례는 관솔에 먼저 불을 붙여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삭정이들에 불이 붙으면서 부엌이 환해졌다.은례는 부뚜막 한켠의 항아리에서 쌀겨를 한 바가지 퍼 솥에 부었다.
『콩을 좀 줄까요?』 『그래라.새끼 밴 소라 그렇게라도 먹여야지.쌍둥이라도 낳았으면 좋겠다만.』 『엄마는.』 은례가 실없이 웃으며 다른 항아리에서 콩을 조금 퍼서 가마에 부었다.무쇠뚜껑을 닫고 나서 은례는 송씨와 함께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아궁이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일렁거렸다.천천히 소가 몸을 일으켜 목을 흔들었다.딸랑거리며 요령이울렸다. 부지깽이로 솔가지를 걷어넣으며 송씨가 말했다.
『느이 아버지는 어찌 저렇게 편안하다더냐?』 『뭐가요?』 『뭐가요라니?누구 자식 아니랄까봐 그러니,그래 넌 걱정도 안되냐?무슨 애가 그런 흉한 오래비 소식을 들었는데 그래도 태평하다는 거야?』 『엄마,엄마가 여기서 속 끓이신다고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런다고 될 일도 없잖아요.그리고 아버지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고요.』 『너까지,조씨네 집안 사람 아니랄까봐 이러니?난 아무래도 네 오래비,죽은 목숨이구나 싶다.』 『엄마는 왜 하필 그런 생각을 해요?오빠가 뭐 그렇게 호락호락한사람이든가요?만주 가서도 그만큼 하고 있었으면 됐잖아요.제발 맘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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