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안깼지만 교묘한 「위반」/북측 실무접촉 왜 늦췄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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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화는 북이 주도한다” 과시의도/정부,반신반의하면서 긍정수용
남북한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회담이 재개되지만 남북대화뿐 아니라 북­미 합의실천 자체가 출발부터 삐걱거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북한이 우리측 제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보인 「예상치 못했던 태도」 때문이다.
한미 정부는 북­미간 합의에 따라 1일 남북 실무대표가 판문점에서 직접 만나 특사교환과 관련된 실무논의를 시작하고 동시에 94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및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 일정도 발표한다는 일정을 잡았었다.
그러나 북한은 『3일 회담장에 나가겠다』고 해 「3월1일 합의동시실천」을 굳게 믿고 있던 한국과 미국을 놀라게 했다.
정부가 1일 이영덕부총리 주재로 긴급 통일관계장관 전략회의를 연 것은 이같은 당혹감의 반증이다.
북한이 상황을 꼬이게 만든 이유에 대해 몇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남한의 94년 「팀」훈련 중단발표와 미국의 3단계 고위급회담 일정발표가 남북접촉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고 접촉재개는 일정만 잡혀도 「재개된다」는 합의문 이행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북­미 합의문이 다른 3개항은 「…한다」로 되어 있으나 남북 접촉은 「재개된다」로 표현된데 따른 해석일 수 있다.
동시 이행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더 깊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북한의 의도를 가능한한 선의로 해석하는 것이고 북한이 남북대화의 비중이나 의미를 가능한한 낮추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다.
남측의 제의를 변형시키는 수정제의로 북한이 남북대화를 주도한다는 인상을 주고 남한내에도 「정부가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불신감을 심어주겠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의 협상분위기로 북­미 합의문의 「남북실무대표 접촉재개」를 「직접접촉」이 아니라 「만나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이를 이유로 한미가 합의전체를 깨지 않을 것이란 계산을 했을 수 있다.
최근 북한 정책결정 과정에 자주 나타나는 정책결정 기구간 협조체계 이상이 이번에도 나타났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허종 뉴욕대표부 대사는 남북 실무접촉이 3일로 연기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는 북한의 미국 협상팀과 남북대화 정책팀간의 의견조율에 이상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남북대화 담당파트에서 「지금까지 남조선이 하자는대로 안해왔다. 이번에도 우리 페이스대로 한다」면서 미국협상팀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입장을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실무대표 접촉과 특사교환 합의는 지켜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1일 오후 가진 이영덕부총리주재 통일관계장관 전략회의를 갖고 이같이 분석했다.
송영대 통일원차관은 회의가 끝난뒤 『북한이 특사교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정부는 그같이 입장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전통문에서 「핵전쟁연습 중지와 남한의 국제공조체제 포기가 인정돼 실무접촉에 응한다」고 한 점이 긍정적 분석의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이 3월1일 실무접촉 재개라는 합의를 깨지는 않았지만 교묘하게 위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실무접촉 재개가 실천되는 시점까지 동시조치를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와 미국이 94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발표와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 일정발표를 연기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의 태도로 미루어 실무접촉과 특사교환에서의 성과를 낙관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북한이 1일 통지문에서 「화랑훈련」 「독수리 93훈련」 등을 핵전쟁 연습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드러내 이들 훈련을 빌미로 회담에 난관을 조성할 수도 있고 남북대화를 낮춰본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팀스피리트 훈련 합의발표와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 일정발표 지연을 이유로 북한이 합의실천을 어렵게 만들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이를 이유로 합의사항 실천을 지연시킨다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면서 『북한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대화는 실무접촉 재개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북한의 태도로 보아 북­미 합의로 형성된 최근의 낙관적 무드에도 불구하고 갈길이 매우 험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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