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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시>텅빈 세상에서의 의미 찾기-여행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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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여행은 그 옛날 갖가지 장애들이 주어지던 모험과는 다르다.곧서사시 시절의 모험이 세계 속에 감춰진 의미들을 탐색했던 것이라면 오늘의 여행은 그 선험적 의미가 없는 텅빈 세상에서의 의미찾기다.
주어진 세계나 일상들은 대체로 무의미하다.그러나 합리를 선호하고 뜻만들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은 그 무의미를 넘어 일정한 의미들을 창출하고 싶어한다.鄭芝溶이나 黃東奎의 뛰어난 시들과 함께 여행시는 이제 우리시에서도 두드러진 한 갈래를 이루어왔다.
대체로 이들 시는 낯선 공간들을 떠돌며 새로운 의미만들기나 숨겨진 뜻찾기등을 시도한다.
특히 해외여행이 손쉬워진 까닭도 꽤 작용했으리라고 여겨지는 여행시들의 활발한 생산현상은 그러나 늘 바람직한 구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때로는 풍물 소개나 관광 수준의 인상기 정도에서 겉도는 작품들도 많기 때문이다.그래서 여행시 역시 자신의 삶과뜨겁게 얽히면서 의미캐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달에도 김승희씨의 여행시들은 꽤 큰 울림을 던져준다.미국 아이오와의 체험을 담은 일련의 작품중 특히「질투」(『현대시』2월호)는 울림이 꽤 크다.아이오와에서 만난 이런저런 나라의 시인들을 통해 이 시의 화자는「나」를 확인한다.곧 화자는 이집트나 인도,하다못해 중국에서 온 시인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에게는 뚜렷한 문화의 혜택(삶의 값)이 없음을 절감한다.아니 화자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대상화하고 반성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은『나는,나는,무엇을 가졌는가?/(우리는 경주와 훈민정음과 단군신화와 설악산과 선운사와…)』하는 것,곧 타자를 통해 자아를,나의 정체성을 되짚고 확인하게 된 것이다.그 질문에대한 대답은 이렇다.
『우리는 생존해 있다.아가야,우리에겐 생존이 그렇게도 어려웠느니』라는 참혹한 목소리가 그것이다.그동안 역사의 가파른 굴곡속에서 화자에게는 생존만이 유일의 혜택이며 자산이었던 것이다.
김승희씨의 나와 세계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성찰은 작금의 그의 시를 폭발시키고 있다.金洙暎의 시적 방법이기도 했던 자신의대상화 작업을 속도감있는 말투들 속에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김윤배씨의「굴욕은 아름답다」(『現代文學』2월호)는 여행이란 틀로 비유를 삼자면아우의 몸안 여행에 해당된다.그여행은 담낭수술과정인데 화자는 모니터에 나타난 내장의 속속들이를 지켜보고 확인한다.그것은 내장 어딘가에 감춰진 마음 을 발견하려는 것.곧『간 한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만년 순경인아우의 내심을 확인』하려는 일이다.화자에게 그 내심은『가슴에 맺혀/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 낸 아름다운 굴욕』들로 확인된다.이 확인은 다르게 말하자면 화자의 깨달음이다.마치 오랜 모험 끝에 숨겨진 탐색물을 찾듯이 찾아낸 삶의 의미인 것이다.여느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김윤배씨에게 있어서도 세계는 험악하고 삶은 굴욕인 셈이다.
그러나 그 굴욕은 단문 형태의 진술과 묘사를 덧쌓아가는 가운데 아름다운 것으로 질적 승화를 하고 있다.
洪申善〈시인.水原大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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