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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골드만삭스를 갖는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금융 분야에서도 나올수 있을까. 나온다면 누가 주인공이 될까.

자산 200조원대로'금융의 삼성'같이 덩치 큰 국민은행, 효율과 혁신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온 신한금융그룹, 하나지주. 펀드시대의 기린아 미래에셋. 아니면 아직은 모습을 숨기고 있을 새로운 차원의 금융기업. 이들 중에 누가 가장 '한국의 씨티나 골드만삭스'화할 싹수가 있고 그 싹을 키우기 위핸 어떤 토양을 갖춰야 하나.

10년-20년후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하고도 어려운 테마이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잘하는 선수 더 잘하게 하고 선수들끼리 서로 피터지게 경쟁해 어떤 글로벌 금융기업과도 맞붙어서 밀리지 않을 실력과 맷집을 갖추면 된다.

금융은 본질적으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고 밑전 많은 데가 이기게 돼있으니 무엇보다 큰 덩치도 필요하다. 서브프라임(비우량모기지) 엔캐리(금리싼 일본 돈 빌려 투자하기)청산 사태에서 알수 있듯 금융은 판돈을 불리기 위해 두배 세배는 물론 10배의 레버리지(지렛대)도 불사한다. 그리고 한국 기업에 숙명처럼 따라 다니는 '수출 기업'이어야 한다는 당위도 있다.

한국경제를 뒤돌아 보면 60-70년대가 중동 근로자, 월남파병, 서독 광부-간호사같이 노동력 팔아 공장 지은 원시적 자본 축적기였다면 80-90년대는 반도체 자동차 섬유같은 상품 팔아 국부를 불린 시기이다.

노동력 상품 다음은 바로 돈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많이 부유로워졌으니 여유 돈에 레버리지한 자금을 보태 해외에 투자하고 개발하고 M&A하고 또 포트폴리오 관리하는 금융신기법과 금융신상품을 수출해야 한다.

이런 금융수출에 누가 가장 적합할까. 개인은 미국 부동산이든 베트남 주식이든, 자기 돈이든, 남의 돈을 끌어 모아서든지 맘껏 투자할 수 있게 돼있다. 은행 증권사들도 대체로 해외투자가 자유롭다. 그러나 기업들의 해외 금융은 이런 규제, 저런 제한으로 묶여있다.

모스크바 사정을 삼성전자 세일즈맨이 더 잘알까, 증권사 파견 직원이 더 잘알까. 뜨고 있는 중국 시장을 궤뚫고 있는 사람은 SK 상사 직원인가 지점 은행원인가.

달랑 007 가방 하나 들고 5대양 6대주를 누볐던 종합상사원들의 투자 노하우는 사장되고 있다. 소버린의 쓰라린 경험과 카알라일, 론스타의 공격에서 배운 것을 중국 인도 베트남에 가서 써먹어야 하는데 썩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 영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 바로 기업을 막아놓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금융을 분리하고 차단하는게 바람직한 시대가 있었다. 한걸음 더나가 기업의 금융겸업을 엄격히 통제하는 '금산분리 정책'은 지금도 대한민국 산업정책, 금융정책의 제일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부족한 돈 박박 ?어모아 기업에 대주던 자본부족의 시대는 잉여자금의 시대로 바뀌었고 은행과 증시가 기업을 지원해주는 독일-일본식은 이젠 금융 자체가 고수익 산업이자 성장의 엔진이라는 영-미식 패러다임으로 전환됐다. 금산 복합은 국제적 메가트렌드이기도 하다.

묘목은 온상에서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장한 묘목은 산으로 보내야지 온상에 잡아두면 망가진다. 온상에선 묘목만 자라지 거목이 나올 수 없다.

94년말 경제기획원은 해체됐고 상공부는 기능을 바꿨다. 더이상 배울게 없어 하산하는 고수처럼 당국의 지도와 간섭에서 풀려난 삼성전자 현대차는 밖으로 펄펄 날아 상품수출로 나라 안을 살 찌웠다. 금산분리를 고착화하고 이를 통해 득을 보는 세력으로 기존의 금융자본가들과 더불어 금융당국이 떡 버티고 있다.

세계적 금융기업이 탄생하기 위해선 개발시대의 유물인 금산분리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고 재경부 금정국, 금감위, 금감원의 앙시아 레짐이 혁파돼야 한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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