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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수퍼맨’ 심슨 고향마을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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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의 인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극장용으로 만든 ‘심슨가족-더 무비’는 별생각 없이 웃고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단, 전제가 있다. 속칭 ‘미국물’이 든, 그중에도 미국 대중문화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더 유쾌하게 즐길 수 있겠다.

 1987년 첫 방송 이후 20년째 장수하는 TV시리즈 ‘심슨가족’은 비틀고 뒤집어서 웃기는 게 특징이다. 그 대상인 미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이나 사회상, 할리우드 스타나 정치인 같은 유명인(목소리로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을 대충은 알아봐야 재미가 있다. 이 뒤집고 비틀기는 심지어 ‘심슨가족’을 방송하는 폭스채널도 겨냥한다. ‘심슨가족’처럼 혁신적인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는 반면 보수·상업·선정주의로도 이름난 방송사다.

 특히 심슨네가 어떤 사람들인지 좀 아는 게 좋다. 우선 아버지 호머 심슨. 넉넉한 배 둘레에 군것질거리를 들고 TV 앞에서 뒹구는 게 일상인 그는 철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생각이 없다. 러닝머신에서 땀 빼고, 트랜스지방에 신경 쓰고, 나아가 지구온난화까지 걱정하는 도시의 지식인 중산층과 정반대다. 아들 바트 심슨은 여기에 더해 갖은 말썽이 특기다. 공부? 당연히 못한다. 그나마 다행으로 딸 리사 심슨이 똑똑하다. 섬세하다 못해 소심한 이 모범생은 환경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동참하도록 어른들을 설득하는 행동파다.

 가장 다행인 것은 엄마 마지 심슨이다. 선인장을 얹은 듯한 머리모양과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만 빼면 행동도 생각도 상식적이다. 호머 같은 남편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한껏 폄하해 소개한 듯하지만 사실이 이렇다. 사실은 이래서 재미있다.

 이번 극장판은 TV 시리즈의 이런 특징을 큰 설명 없이 이어받고, 규모를 확대하는 전략을 더했다. 심슨네가 사는 마을 스프링필드에 대형 환경재난이 벌어지고, 연방정부는 거대한 투명덮개를 씌워 마을을 외부와 차단시킨다. TV 시리즈와 비교하면 블록버스터급 전개다.

 이 위기를 해결할 사람은 당연히 주인공인 심슨네다. 가만, 좀 이상하다. 심슨이 수퍼맨 노릇을? 첨언하자면 이 재난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호머 심슨이다. 호머는 애완용 돼지의 배설물을 안 그래도 오염이 심한 호수에 그냥 버려 돌연변이 괴물까지 출현하도록 만든다. 왜 그랬느냐 하면 공짜로 나눠 주는 도넛을 받으러 갈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다. 역시나 생각 없는 호머답다.

 이 사실을 안 마을사람들은 화형식이라도 할 듯 쳐들어온다. 간신히 몸을 피한 가족들은 호머가 평소 꿈꿔 왔던 머나먼 알래스카로 옮겨 간다. 연방정부(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대통령이니 당연히 별생각이 없다는 설정이다)는 이후 스프링필드를 없애버릴 음모를 꾸미고, 이를 눈치 챈 다른 가족들은 고향 사람들을 구하러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가만, 이 대목도 이상하다. 심슨네를 잡아 죽이려던 이웃 아닌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호머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실은 이것도 TV 시리즈부터 이어진 ‘심슨가족’의 특징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암만 못된 짓을, 어이없는 짓을 해도 이 마을에서, 이 시리즈에서 축출되는 일은 별로 없다. 미우나 고우나 같은 출연진, 같은 이웃이라는 전제가 있다. 암만 막가파식으로 까부는 듯해도 ‘심슨가족’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가치를 긍정한다.

 스프링필드로 돌아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아내 마지와의 결혼생활이 파탄 직전에 이른 호머는 ‘남 없이 나도 없다’는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 이웃과 가족을 구하러 간다. 자상하고 책임감 넘치는 남의 아버지를 부러워하고 호머에게 등을 돌렸던 바트 역시 호머가 짜릿한 모험을 제시하자 반색하고 동참하다.

 길게 설명했으니 짐작하실 것이다. 일본만화 ‘짱구는 못말려’처럼 국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심슨가족’은 좀 못돼먹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아이들한테 권장할 만한 가족상은 아닐망정 공감할 만한 가족상이 들어 있다.

 

이후남 기자
 

주목! 이 장면 초반에 호머와 내기를 한 바트가 발가벗은 채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마을을 질주한다. 신체 주요 부위가 연속적으로 절묘하게 가려지는 시각적 유머가 펼쳐진다. ‘오스틴 파워’ 같은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니 이것도 패러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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