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연극 무소의뿔처럼혼자서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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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소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作)가 독서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20만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힌데 이어 이 소설을 극화한 같은 제목의 연극 또한 화제작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30대 기혼여성들의 실존적 고뇌를 섬세하고 실감나게 그려낸 원작의 탄탄함과 유명세가 연극『무소…』의 성공에 일정한 도움을 주고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그러나『무소…』는그 자체로 한편의 잘 만들어진 연극이라는게 연극 을 본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이다.
무엇보다도 이 연극은 소설 속의 세주인공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성공하고 있다.31세 동갑내기 대학동기동창으로 각자 다른삶을 살아가고 있는 혜완(김미경扮).영선(김진희扮).경혜(박혜숙扮)3명의 여성이 극 속에서 팔팔하게 살아 움 직이고 있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불행을 삭이며 소설가로 꿋꿋이 살아가는 이혼녀 혜완의 차분한 연기와 남편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동일시하며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영선의 쥐어짜는듯한 연기,그리고물질적 안락에 애써 안주하며 남편의 노골적 외도 로 방황하는 경혜의 통통 튀는 연기가 앙상블을 이루며 끝까지 관객을 사로잡는다.세 사람의 원숙한 연기와 잘 맞춰진 호흡은 연극으로서『무소…』의 성공에 결정적 배경이 되고 있다.
新銳 서충식의 깔끔한 연출도 연극의 성공을 크게 돕고 있다.
장면과 장면을 暗轉기법을 사용,자주 끊음으로써 장면마다 여운을남게 한 그의 연출은 자칫 늘어지기 쉬운 소재를 무리없이 잘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또 전체적으로 무거 운 주제의식이주는 부담감을 TV리포터나 동화를 구연하는 학교선생님을 돌출시켜 처리한 재치따위도 돋보인다.
연극은 어차피 무대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고,가상의 현실을 통해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오늘의 여성문제 실체에 접근해 보려는 진지한 시도로서 이 연극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같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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