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한장이 범인꼬리 잡았다-탁명환씨 살해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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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卓明煥씨 피살사건 해결의 1등 공신은「달력」종이였다.
17일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손잡이 부분이 흰종이에 감겨져있는 쇠파이프를 수거했다.
조사 결과 파이프를 감은 종이는 H금융기술원이 발행.배포한 금년도 달력의 맨 뒷장(11,12월분)을 거칠게 찢은 것으로 드러났고 뒷면에는 12명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었다.
12명의 이름을 전산 추적한 결과 동명이인은 모두 5천여명이나 됐다.
경찰은 이들의 공통점을 찾다가 주소가「서울구로구오류동」으로 되어있는 12명을 가려냈고 탐문 수사를 통해 이들이 대부분 대성교회 직원및 신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와함께 H금융 宋모사장이 이 교회 집사로 지난해말 교회에 문제의 달력을 1백여부 기증했으며 기사 대기실 벽에도 1개가 걸려있었으나 사건발생 직전 없어졌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19일에는 이 교회 쓰레기 소각장을 수색해 문제의 달력과 같은 달력들이 최근 한꺼번에 소각된 흔적을 찾아냈다.
달력 종이가 범행과 결정적으로 연결됐다는 심증을 굳힌 경찰은20일새벽부터 이날 밤까지 달력에 적힌 12명 모두의 신병을 확보,철야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모든 과정을 치밀.신속하게 처리한 범행으로보아 범인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결정적 증거를 남겼을리 없다」는 의문점과 종교단체가 관련됐다는 특수성때문에 섣불리 범인을 단정할 수 없는 처지였다.
예상대로 연행된 이들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숙소관리인 李모씨(30)와 소각장 관리인 宋모씨(27)를 상대로 달력 소각 부분을 집중 추궁,이들로부터 18일 이교회 조종삼목사(33)가 곳곳에 걸려있던 이회사의 달력을 모아불태웠다는 진술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이어 李씨로부터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교회직원 任弘天씨(26)가『사건당일 교회에 있었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었다는진술도 확보했다.
20일 오후11시쯤 교회안에 있다 연행된 任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경찰이 달력종이를 증거로 알리바이등을 캐고 들어가자 30분도 못가 고개를 떨구고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자칫 미궁에 빠질뻔했던 사건이 발생3일만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權泰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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