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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연기 영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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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9월 초.중순에 열릴 전망이다.

당초 정상회담 일정(8월 28~30일)대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났다면 그 후 잡혀 있는 굵직한 다자외교 일정과 맞물려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됐다.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핵시설 불능화(가동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구상을 밝히거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할 경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6자회담 본회의 ▶유엔총회 ▶6자 외무장관회담으로 이어지는 대형 이벤트를 통해 북핵 해결의 가닥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시기가 10월 초로 넘어가면서 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연장선상에 서게 됐다. 국책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남북 경협이나 평화체제 논의보다 비핵화가 핵심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8월 정상회담보다 10월 정상회담의 파괴력이 훨씬 작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핵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한 정상회담'이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APEC 정상회의 이후 추진했던 남북한.미국.중국의 4자 정상회담도 어렵게 됐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이정표를 꽂기 위해 4개국 정상이 만나려면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발판이 필요했다.

이와 함께 10월 초로 예상됐던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1개국 정상의 모임이라는 성격 때문에 양자 회담이 열리더라도 노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밀도 있는 현안을 논의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는 "시드니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그 뒤에 미국을 방문해 회담을 할 여지는 작아진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될지는 10월 초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 좌우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연기는 정부의 대북 관계 전략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상회담 이후 열릴 남북 장관급.장성급 회담의 추진력이 약해질 전망이다. 정부 일각에선 정상 간에 긴장완화.경제협력 문제를 큰 틀에서 합의한 뒤 후속 회담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선을 불과 두 달 반 남겨 놓은 시기에 정상회담이 열리게 돼 남북 대화의 합의사항 실천은 어차피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정상회담 카드가 매력적이지 못할 경우 김 위원장이 회담 자체를 무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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