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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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1) 『어찌 이렇게 일본은작은지 모르겠습니다.그 하는 도량을 보면 이건 영국과는 판이 다르거든요.영국도 식민지를 곳곳에 가지고 있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을 크게 건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치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들었다.바람이라도 들어오는가.작은 골방에 켜진등잔불이 이따금 불꽃을 흔들고 있었다.앞에 앉은 사내는,깎지 않은 수염이 거무스름하게 입가를 물들이고 있었지만 옷차림은 영락없는 촌 무지렁이 그것이었다.
오십 줄로 보이는 사내는 그러나 그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영국도 일본도 섬나라이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그러나 하는 것은 그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달라도 많이 다르지요.한 나라는 바다의 중심으로 나아가서 해양국가가 되었는데,일본은 같은 섬나라이면서도 바다로 나간 것이 아니라 제일 가까운 육지로 기어올라오기나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치규는 말없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영국은 그 많은 곳에서 식민통치를 하고 있지만 그 나라의 민족정서를 말살하려고도,자기네 것을 강요하려고도 않습니다.그들피지배국과 함께 지배를 한다고나 할까요.오히려 자국과 이해가 같은 것들을 찾아내고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것들을 가운데 두고 통치를 하지 않습니까.어떻게 보면 간접통치라고도 할수 있습니다.그런 방법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겁니다.』 치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자면 일본은 아주 다르군요.성을 갈면 개라고 생각하는 나라 사람들에게 성을 갈게 하지 않나.몇 천년 써 온 제나라 말을 쓰지 못하게까지 하고 있으니.』 『이건 통치가 아닙니다.말살입니다.일본의 조선에 대한 정책은 말살정책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묵묵히 갈자리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흙벽에는 사내의 옷이 걸려 있었고,방 한 구석에 개어 놓은 이부자리는 초라하고 얇았다.
『꽃이 되려면 사쿠라,사람이 되려면 사무라이라고 하는 왜놈들말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거기에 바로 이들의 속성이 보입니다.
확 피었다가 깨끗이 떨어진다.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만,저는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일 본의 패망이 느린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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