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제재보다 대화로” 동감/한 장관­미 관계자 연쇄회담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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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막판까지 북 태도 바뀔 가능성 대비/안보리가도 단계적 절차 선택할듯
한승주 외무장관과 미 고위관리들의 11,12일 이틀에 걸친 북한 핵정책 조율을 위한 마라톤회담은 이 문제로 인한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대화를 통한 해결노력을 계속할 것을 합의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한 장관이 앤터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앨 고어 부통령·윌리엄 페리 국방·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 등을 차례로 만나 마지막 순간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미국 입장을 거듭 확인함에 따라 북한 핵문제는 설사 유엔안보리로 넘어가더라도 상당기간 「제재」보다는 「대화」쪽으로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두나라 핵정책 최고결정자들의 이같은 대화정책유지 합의는 빈에서의 북한­국제원자력기구(IAEA)간의 핵사찰 협의가 결렬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협의가 재개될 수 있고,경우에 따라서는 뉴욕에서 북한과 미국이 의견을 교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북한이 대화판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떤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대화를 통한 해결방침을 정한 것은 현 시점에서 대화를 중단하고 제재쪽으로만 치닫다가는 결국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도 못한채 한반도의 긴장만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게다가 대북제재에 필요한 중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대화노력이 소진했음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이번 연쇄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이 사찰협의를 지연하고 있는 이유 ▲북한 핵문제의 유엔안보리 회부 가능성 및 그에 따른 대책 ▲한반도 위기설 및 안보상황 ▲북한에 미국의 뜻을 분명히 전하는 방안 등과 관련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한미 양국은 우선 북한이 IAEA와 사찰협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북한 내부의 정책결정 구조 ▲북한의 협상전략 ▲북한과 IAEA간의 현격한 견해차 등 세가지로 분석한뒤 이 문제가 21일까지 풀릴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로 나눠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두나라는 21일까지 북한이 IAEA의 임시 및 통상사찰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유엔안보리에서 시작될 대북조치들에 동참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유엔안보리의 조치들은 대화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즉각적인 제재보다는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고 미국측도 이에 동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유엔안보리의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경우 ▲시한을 정한 사찰촉구 결의안 채택 ▲부분적 금수조치 ▲해상봉쇄 등이 수반되는 전면적인 경제제재 조치 등의 단계적인 절차를 밟는 외교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내 일부 강경파들이 흘리고 있는 한반도 위기상황과 관련해서도 한반도에 위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유지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간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이와관련,한 장관은 『한반도의 위기상황에 대한 양국정부의 평가 차이라기 보다 일부 미 언론보도로 생겨날 수 있는 상황 때문에 우리는 미국에 우려를 전한바 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일관된 대응은 가능한한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 문제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나라는 북한 김일성주석 등 최고책임자들이 핵문제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우려를 표시하고 그 대책도 논의했다.
특히 북한이 미 언론의 강경보도에 자극받아 이를 미정부 정책인 것으로 착각,과연 미국이 자신과 3단계 고위급회담을 가질 의사가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다.
이 경우 북한이 자칫 판단을 그르쳐 핵문제가 벼랑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IAEA가 북한 핵안전조치의 연속성이 깨졌다고 판단하지 않는한 지난해말 북한과 뉴욕에서 합의된 내용들은 모두 유효하다는 사실을 북한에 알리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IAEA 사찰요건의 완화나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 아니라 탈퇴를 유보한 「특수한 입장」에서 사찰을 받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미국이 간여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할 생각이다.<워싱턴=박의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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