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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살리자>16.제주 조랑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때 멸종위기를 맞았던 우리나라 유일의 토종말인 제주조랑말의혈통 정립을 위한 연구가 천연기념물 지정(86년2월8일.제347호)을 계기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마사회와 제주大부설 축산문제연구소,농촌진흥청 제주축산시험장등이 공동으로 벌이는 이 연구는 순수 조랑말 보존책과 생산을 적극 권장하는 육성책으로 나뉘어 95년까지 진행된다. 뒤늦게나마 시작된 이같은 연구는 현재 순수 조랑말의 보존및 육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나 토종 조랑말이 외국산 경주말보다 체력이 뛰어나고 왕성한 번식력을 보이는 특성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고있다.특히 외국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정통 경주용으로도 개량하려는 야심찬 구상까지 하고 있다.
80년 2천4백여마리에서 86년 1천3백47마리까지 줄어들었던 제주 조랑말은 이같은 노력으로 매년 20% 정도씩 늘어나 현재 3천여마리로까지 늘어났다.
특히 제주축산시험장은 90년부터 조랑말의 식용판매 가능성에 착안한 육질 연구에 착수,쇠고기보다 연하고 맛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새로운 농가 소득원으로 개발키 위해 인공수정등 대량생산에 필요한 기술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제주축산시험장이 91년 요리전문가를 비롯,축산관계자.농민들을대상으로 실시한「말고기와 쇠고기의 맛검사」결과 노린내를 없앤 말고기가 쇠고기보다 연도(軟度)와 맛에서 각각 43%,10%정도 우수한 것으로 1차 평가받았다.
또 일본등 외국산에 비해서도 영양가나 맛에 있어 전혀 손색이없는 것으로 드러나 말고기 수출 가능성도 확인했다.
당시 말고기 맛을 본 사람들은『고기가 질기다고 생각 했었는데오히려 쇠고기보다 연한데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앞서 90년 북제주군구좌읍덕천리 韓千澤씨(70)가일본에 시범 수출한 조랑말 고기의 경우 담홍색 빛깔에 상강육(霜降肉‥서리가 낀 것처럼 지방이 알맞게 뒤섞인 상태)이 많은데다 부드러워 최상품으로 인정받기도 했다.이에 따라 제 주도내 2백여 조랑말 사육농가들은 수송거리가 짧아 냉장수송이 가능한 일본을 비롯,프랑스.룩셈부르크 등 말고기를 즐겨 먹는 국가들을대상으로 양질의 조랑말 고기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일부 농가에서 쇠고기보다 비싼 가격인 ㎏당 2천~2천5백엔씩 받고 연 평균 3t가량(1백여마리 분량)일본에 수출하고있는 정도이지만 이미 일본측에서도 제주 조랑말 고기의 품질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
다만 ㎏당 8백엔씩 하는 중국산 말고기와 비교해 가격경쟁력만보완되면 전망이 매우 밝은 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고려 충렬왕때(1276년)몽고군이 제주도에 목마장을 설치하면서 들여온 1백60여마리가 제주도의 풍토에 적응하며 토착화된 것으로 알려진 조랑말은 70년대까지만 해도 농삿일을 도맡아 해온 듬직한 일꾼으로 농어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차가 귀하던 시절 조랑말이 마차에 연탄등 짐을 싣고 부지런히달리는 모습은 제주도 뿐만 아니라 서울등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않게 볼 수 있었던 풍물이었다.
실제로 한국마사회 조사결과 외국산 말과는 달리 하루 32㎞씩22일간 행군을 할 정도로 체력이 뛰어난데다 가파른 산길을 잘오르고 질병 저항성도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故 朴正熙대통령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73년 강원도 전방부대에 조랑말 수송부대인「馱馬部隊」를 창설토록 지시,70년대 후반까지 산악지대 군기지의 식량.탄약 수송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강원도 일부 산간 지역에서는 묘목운반용,또는 자연보호를 위한 산악순찰용으로 쓰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90년초 조랑말과 비슷한 중국산 말 1백여마리가 육지를 거쳐제주도에 들어왔으나 몇해만에 60~70%가 폐사한 것만 보아도조랑말이 우리나라 풍토에 잘 적응하며 질병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농경사회에서 소에 버금갈 정도로 요긴한 존재였던 조랑말은 그러나 80년대 이후 농기계 보급과 자동차등 교통수단의발달로 짐꾼 자리에서 밀려나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조랑말과 함께 일부 농가에서 힘든 농삿일을 도맡아 했던 당나귀와 노새(암말+수나귀),버새(수말+암나귀)는 이보다 앞선 70년대초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일나무밑을 지나다닐 정도로 작다는 뜻의「조롱」에서 이름이 붙여져 조롱말→조랑말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랑말의 키는 평균 1백16㎝(암컷 1백17㎝,수컷 1백15㎝)에 몸무게가 2백~2백50㎏정도에 불과하며 다른 품종과는 달리 암컷이 수컷보다 체격이 큰 것이 특징.
털색깔은 밤색을 비롯,적갈.회.흑.담황.얼룩색등 다양하나 ▲밤색 38.6%▲적갈색 29.5%▲회색 22.4%의 비율로 3가지 색깔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외국종과는 달리 얼굴이 비교적 잘 생긴 貴相인데다 다리는가늘지만 보기보다 튼튼해 또각거리면서도 백리길을 하루만에 달음질칠 정도다.
말이 이 땅에서 가축으로 길러지기 시작한 것은 김해패총을 비롯해 평양시 외곽인 미림리 유적,함북경흥군웅기의 소평동 패총,서울암사동및 경북점촌 유적지 등에서 말의 이빨이 발견된 점으로미뤄 지금부터 4천~5천여년 전인 석기시대부터 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말뼈론 邪氣쫓아 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8~7세기의것으로 나타난 평양주의리 이탄층 유적에서 나온 나무수레바퀴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후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마면(馬面),마탁(馬鐸)등의 유물과『삼국지 위지 동이전』『사기 조선전』의 「부여에서 명마(名馬),고구려에서 소마(小馬),예에서 과하마(果下馬)가 산출되었다」는 기록에서도 말의 사육과 이용이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말은 또 邪氣를 쫓아준다는 믿음도 있어 선조들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 남자는 왼쪽에,여자는 오른쪽에 말뼈를 차고 다녔으며 삼재(三災)가 든 아이에게는 밤톨만하게 깎은 조랑말 모양의 조각을 차고 다니도록 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말고기를 먹지는 않았지만 약용으로는 자주이용했다.
몸에 난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 위해 말고기를 사용했고 포(脯)는 한열(寒熱)치료제로,뼈는 습진약으로,젖은 갈증 해소제로,기름은 주근깨 치료제로 각각 이용했다.
『東醫寶鑑』에는 특히「흰말고기는 남자의 정력을 증강시켜 자식을 낳게하며 근골(筋骨)을 기르고 허리와 척추를 강건하게 한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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