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수사 고민하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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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대는 의원… 물증확보 못해 난관/대검 중수부,서울지검에 떠넘겨
검찰이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으로 또한번 고민하고 있다. 검찰은 한국자보 이창식전무가 2일 국회에서 1백만원의 뇌물공여 의사표시 혐의를 시인하는 증언을 함으로써 어떤 형태로든 이번 사건을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
검찰은 3일까지도 「국회의 자율성 존중」을 이유로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여부를 명백히 하지 않은채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의 속이 타는 것은 지금까지의 의원비리 사건과는 달리 이번 사건은 관련자 범위가 불투명한데다 뚜렷한 물증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
따라서 수사가 단순히 뇌물을 주겠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거절당한 기업 관계자 처벌에 그치거나 뇌물수수혐의 의원들에 대한 면죄부성에 그칠 경우 여론의 지탄이 검찰로 쏟아질 수도 있다는 것.
반대로 기업의 조직적인 국회 로비전모를 검찰이 밝혀낸다 하더라도 사법처리 범위와 수위조절을 두고 검찰은 또 하나의 벽을 넘어야 할 운명.
수서사건 수사 당시 한꺼번에 국회의원 5명을 구속시키는 등 대형사건 수사를 전담해온 대검 중앙수사부가 이번 사건 수사를 피한채 서울지검으로 처리를 미룬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최소한 김말룡·장석화의원 등 현직 의원 2명의 소환조사가 불가피하고 많게는 1개 상임위 의원 전원을 소환 조사해야 할지도 모를 사건이지만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
서울지검이 수사할 경우 서울검사장이 수사책임을 지는 지검 차원의 사건이 되지만 중수부는 검찰총장 직접 지휘를 받는 기관이기 때문에 자칫 검찰 전체의 명예와 직결된다는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뇌물 공여자는 있는데 수뢰자가 없다」는 국회윤리위의 조사결과다.
또 사건을 폭로한 김말룡의원이 돈봉투를 뜯어 수표번호를 적어두거나 복사해두었으면 좋았겠으나 내용물이 수표인지 현금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되돌려주었다고 주장,근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이 선뜻 수사에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사가 쉽게 풀리려면 뇌물을 준 쪽에서 쉽게 응해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국자보 관계자들의 태도로 보아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
특히 한국자보의 로비가 있었다는 지난해 11월은 금융실명제 실명전환기간 직후였던 탓에 고액권 수표로 뇌물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희박해 자금추적으로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정도 검찰을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자보측이 만약 영업소에서 입금된 소액권 수표나 현금을 로비자금으로 썼을 경우 수표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해 수사의 어려움은 배가된다. 결국 검찰은 한국자보 관계자의 진술과 노조측의 제보를 단서로 회사 비자금 등 뇌물 출처와 최종 수뢰자를 찾아낼 수 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게 검찰 주변의 한결같은 우려다.
따라서 뇌물공여자의 진술이 확보되지 않으면 수뢰혐의자의 예금계좌 등을 추적하거나 사무실·가택을 압수수색하는 것이 검찰 수사 수순이지만 누구부터 누구까지 자금추적이나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어느 검찰 간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실정.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 전무가 3일 국회 윤리위에서 『김 의원에게만 현금으로 1백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도 오히려 검찰 수사의 불가피성만 부각시켰을뿐 검찰의 고민을 풀어주지는 못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치적 사건이 모두 그러했듯이 마지못해 뒤늦게 칼을 뺀 검찰의 수사결과가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는 결국 일선 수사진의 능력과 검찰 수뇌부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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