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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조」 소동(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조선조 광해군때 서양갑이라는 사람은 서자출신이었다. 벼슬길이 막히는 등 부당한 차별대우에 분개한 그는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여섯 젊은이들과 함께 소양강상의 「죽림칠현」이란 조직을 만들어 곳곳에서 강도짓을 일삼았다.
당시 최고 갑부였던 이국숭의 집을 습격해 재물을 약탈하는가 하면 영남에서는 은상을 쳐죽이고 은 6백냥을 약탈하기도 했다. 그의 범죄 특징은 동시다발이라는 점이었다. 7명의 동료들을 전국 각처에 분산시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관의 눈을 혼란시켰던 것이다.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허균이 이들의 행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홍길동전』을 썼으리라는 일부 학계의 견해는 꽤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작품속 홍길동의 활약상을 보면 서양갑 일당의 범죄행각과 흡사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홍길동전』에서는 똑같은 이름의 홍길동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의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갑·홍길동 등을 의적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의 범죄수법을 흉내낸 가짜들이 함께 활약했다는 사실도 주목해볼만 하다. 실제인물들이었던 연산군때의 홍길동,명종때의 임거정,선조때의 이몽학 등의 경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짜들은 오직 그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의적들의 이름과 수법을 빌려 온갖 못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민초들로부터는 갈채를 받았던 것이다.
요즘 한창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3인조 강도사건을 「모방범죄」로 간주하는 검찰 등 일부의 견해를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다분히 있다.
이들을 하루속히 소탕해야 하는 검찰이야 그런 생각을 가질리 없겠지만 경찰밖에서 「모방범죄」로 보는 견해의 배경에는 첫 3인조 강도의 범행수법이 경찰의 수사능력을 비웃을 만큼 대담하고 교묘한 것이어서 그같은 수법을 흉내낸 범행들이 속출하는게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같은 일반적 느낌들은 두말할 나위없이 잇따라 발생하는 강도사건 앞에서 경찰의 수사력을 믿지 못하고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시민들의 처지에서 기인한다. 강도의 수법이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모방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리라는 시민들의 걱정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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