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미국인 부자들도 지프 손수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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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90년대 미국의 생활 수준을 말해주는 상징적 상품들은 무엇일까.『당신이 선택하는 것,그것이 곧 당신』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미국인의 신분은 그가 고르는 제품의 상표로 결정되곤 한다.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지『포천』은「미국의 계급」이란 기사에서 계층별로 주로 소비하는 자동차.구두.술등「신분증명품」들이 80년대에 비해 90년대에 어떻게 변천했는지 분석하고 있어 관심을끈다. 이에 따르면 80년대 미국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남에게어떻게 하면 잘보일까」라는 겉치레 일변도였다는 것.미국인의 구매목록 1호인 자동차의 경우 중상류층 이상으로 분류되려면 벤츠를 타야만 했다.시보레를 몰면 중산층,한국산 엑셀을 모는 사람은 저소득층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들어선 상황이 달라진다.「남의 눈길」에서「자기만족」으로 생활 방향이 바뀐 것.벤츠 뒷좌석에 타던 상류층은 이제 레인지로버(지프의 일종)를 손수 운전한다.중산층도 세단아닌 미니 밴(봉고)을 서슴없이 선택한다.
〈도표참 조〉 여성들의 구두도 마찬가지.10년전 상류층 여성은 하이힐만을 고집했다.소득이 떨어질수록 굽 낮은 구두를 신는다고 여기던 때였다.반면「나만 편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90년대의 유행은 뒷굽높이가 1인치를 넘지않는 로힐. 하이힐을 신는 여성은 오히려 저소득층으로 오인될 판이다.
바에서 동페리뇽.백포도주등 고급술을 마셔야 대접받던 것도 옛말이 됐다.저렴한 미국산 포도주가 90년대 중상류층의 애호주로자리잡은 것.
무엇보다 변화가 뚜렷한 것은 취미분야다.80년대엔 중상류층이상은 의레 골프를 쳤지만,컴퓨터가 대량보급된 요즘 그들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면서 운동을 대신하고 있다.과거 극장을 즐겨찾던 중산층은 비디오시청으로 바꿨는가 하면 경기관 람만 하던 저소득층은 자기자신들이 직접 운동장에서 시합을 하며 즐긴다.
이처럼 급격한 변동은 미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종 계층.그룹들이 이민유입과 경제악화로 분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80년대 러트거스대학의 폴 퍼셀교수는 미국사회가 최상류층에서 극빈층까지 9개 계층으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한 시장조사회사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사회에 존재하는 계층은 줄잡아 62개나 된다.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어디쯤 놓였는지를 과거처럼 쉽게 감잡을 수 없게 된 미국인들은 허영심에 가득한 전통적 계층의식 보 다는 개인의실리위주로 생활방식을 바꾸게 됐고,소비패턴 또한 간소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姜贊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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