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28) 얼굴이 벌겋게 되어 길남은 명국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어린 놈이래도 그렇게 생각이 얕아서야 무슨 일을 함께 하겠냐?』 『저는 그냥.보기에 딱해서….』 『뭐가 보기 딱해?』 『그렇잖아요.물건값 잔돈도 제대로 안 주는데,그걸 보고그럼 그냥 지나치자는 거예요?』 『지나쳐.중뿔나게 나서지 말아.무슨 소린지 알아듣겠냐? 이제부터는 그러라구.』 옆에 서 있던 진태가 명국의 옷소매를 잡았다.
『아이구,아저씨도.말이야 바로 해야지요.길남이가 해도 백번은잘 했지요.』 『이놈은 개×에 보리알 끼듯 끼어들기는.』 내지르듯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는 명국의 서슬에 머쓱해진 진태가 머리를 긁적였다.휭하니 명국은 앞서 가 버리고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저러냐? 저 양반.』 『잔 신경 쓸 일이 많은가 보다.
』 『아니,이게 무슨 화낼 일이라고 그러니.맞잖아,네가 잘한 거 아냐.왜놈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는데 그러면 됐지.난 속이 다 시원하던데,그걸 가지고 남의 일에 왜 끼어드냐고 하면,그럼눈 감고 귀 막고 살라는 얘기 아냐.』 『바로 그말이야.눈 있어도 난 장님이오,입 있어도 난 버버리요 하고 살라는 소리지.
』 그날 밤,명국은 벽에 기댄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길남이를 데리고 꼭 여길 빠져나가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잡히면 죽는데,잡히면 죽지 않으면 병신되는 건 불을 보듯뻔한데,이제 와서 내가 왜 여길 빠져나가려고 이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가.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노무계 사람들의 감시도 마찬가지다.걷어차고 주먹질하고 잘못 걸리면 쥐어짠 행주처럼 흠씬 두들겨맞아야 하는 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그런데 왜 이제 와서 여길 탈출하겠다는 건가.똑같은 생각을 명국은 한다.
옆에서 윤씨가 떠들고 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이게 아주,벼룩이 등때기에다가 육간대청을 지을 인사일세.』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송곳도 끝부터 들어가는 거여.
일이라는게 다 순서가 있는 법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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