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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칼럼>지도자들의 말.말.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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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부 一言이 重千金이란 말도 있고,말 한마디로 千兩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입은 禍를 불러들이는 門이란 말도 있다.모두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다.그것은 모든 사람에게해당되는 얘기지만 지도층일수록 말의 餘波는 더 커진다.
盧泰愚前대통령의 경우는 말투가 모호해 뜻이 분명치 않고 여러해석을 낳는다는 얘기를 들었다.실제로 대통령의 內命을 받았다는생각으로 일을 추진하다 후에 뜻을 잘못 헤아려서였든,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어서였든 낭패를 본 사람이 적지 않 았다.얼마전 朴泰俊씨가 民自黨대통령후보 지명 과정에서 盧대통령의 권유를 받고뛰다가 중도하차당한 경위를 밝힌 건 그 한 例에 지나지 않는다.그렇기 때문에 그는「물대통령」이니,우유부단하다느니,2重音을 낸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그에 비해 金泳三대통령의 말은 또너무 단호하고 단정적이다.그의 이런 말투는 전임자의「무른 대통령」이란 이미지와는 다른「강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심는데는 기여했다.그러나 그것은 또 그 나름의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 쌀시장 개방 협상 과정에서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대통령職을 걸고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던 지방선거 유세 발언은 당시에도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큰 실수를 하는구나』하는 느낌이 드는 발언이었다.마침 그 직후에 관훈클럽초청 3黨대통령 후보 특별회견이 있어 필자가 바로 그 문제를 제기했다.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대통령직을 걸겠다고까지 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보통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발언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분이직위를 걸고까지 반대할 일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지금 직을 걸고 반대했다가 관철되지 못하면 큰 정치적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강력한 의지를가졌다는 표시이지요….』 난감한 표정으로 더 이상의 부연없이 어물쩍 넘어갔지만 그 때의 그 사려깊지 못한 말로 인한 부담은너무 컸다.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해지자 民自黨에서는 한때 연설문에 그 구절을 넣은 사람을 문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내부적으로야그 사람이 면목이 없겠지만 일단 연설을 통해 金대통령의 말이 된 이상 그건 부질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 후에도 金대통령이「절대로」「기필코」같은 단정적 표현과 강조 어법을 애용한다는데 있다.그렇게 하면 강한 의지 표시는 되겠지만 말에 여유와 융통성이 적어 각박하게 들리기도 한다.또 강조어법이 常用되다 보면 국민들도 면역이 생겨 상대적으로 말의 신뢰도가 떨어질 위험도 있다.
金정부의 2차 내각에는 유난히「所信派」로 불리는 사람이 많다.李會昌국무총리의 소신은 이미 대법관 시절부터 정평이 나있는 터이고 여기에 두 부총리와 국방장관이「소신발언」으로 가세하고 있다. 뻔한 소리를 빙빙 돌리고 우물쭈물하는 것보다는 快刀亂麻식의 소신있는 발언이 듣기에는 백번 낫다.그러나 문제는 그들이私人이 아니라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즉각 큰 파급효과를 내는지도자들이란 점이다.그 소신있는 말이 의외의 부작용 을 내거나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때 그 말은 족쇄가 되어 돌아온다.
공무원 處遇의 추가 개선방안을 강구하자는 건 공무원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는 부패 근절이 어렵다는 총리의 평소 소신에서 나왔을 것이다.기본적으로 옳은 인식이다.그러나 현정부가 만든 예산안이 국회에서 확정된 직후 그것을 고치겠다는 것 이 과연 합당한가.또 勞使안정이 긴요한 이 시기에 그것이 노사 임금협상에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경제부총리의 경제논리 강조와 가격 자율화 소신은 논리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지만 경제 총수의 그런 소신표명은 상품및 서비스가격의 동요와 구시대적 가격 통제로의 回歸만을 결과했다.北韓의인권문제를 제기하겠다는 통일부총리의 정당한 소 신은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남북대화의 門을 오히려 우리가 닫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현역 군사령관까지 가택수색하는등 강한 軍개혁 의지를 과시했던 국방장관의 소신표명은 포탄 사기사건의 미흡한 수사 종결로 말만 앞선다 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라 망치는 人氣영합 국가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소신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물론 여론과 인기에 영합하겠다는 소신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하는 얘기다.역사와 현실에서 우리는 소신으로 포장된 인기영합을 많이 본다.이것이야말로 국민을 타락시키고 국가 장래 를 그르치는 「소신」이다.
그러나 비록 바른 소신도 그것을 표명할 때는 혹시 말만 앞서는 것은 아닌지,막말을 했다가 감당키 어려운 말의 씨를 만드는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思慮가 요구된다.
〈論說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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