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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15)명국이 그에게로 몸을 돌리면서가만히 불렀다.
『길남아.』 『네.』 여전히 명국에게 등을 돌리고 누운 채 길남이 대답했다.그가 또 한숨처럼 말했다.
『미안하구나.』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그래도 아저씨 같은 분을 만나서 아버지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합니다.좋은 어른들하고 사귀셨구나도 싶고.』 『녀석….』 『저는 아저씨한테 아무원망이 없습니다.일찍 알았다고 해서 무슨 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말씀 안 하시고 제게 숨기시려고 했던 그 마음을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만가만 중얼거리다가 길남이 등을 돌린 채 물었다.그 목소리가 마치 속삭이는 듯했다.
『아저씨,저희 아버지,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떤 사람이라니?』 『자식이라는 게 그렇지요.자식이 어디 부모 속을 아나요.속은커녕 오히려 부모 겉도 모르는 게 자식이지요.』 『사내였지.』 명국의 말은 짧았다.그뿐 명국은 말이 없었다.몸을 다시바로 하고 누우며 명국은 눈을 감는다.
『사내다웠다,장태복이.정이 많아서도 사내고,나서야 할 땐 나설 줄도 알았으니 그게 사내지,달리 뭐겠니.정이 많아도 사내는사내지.세상이 잘못 아는 거지.제 계집 제 새끼.그거 절절함을모르는 게 어디 사내라더냐.그거 알고,그거 하 고,그걸 지키려는 게 없어서야 그건 사내도 아니다.』 『제 아버지가…』 길남이 명국에게로 돌아누웠다.
『집안 걱정을 많이 하셨던가 보네요.』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중얼거리듯 말하면서 명국이 길남의 손을 잡았다.그손에 힘이 주어진다.
『난 이번에는 너랑 같이 간다.네 아버지는 혼자 갔지만 너는나랑 같이 간다.그렇게 알아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길남은 안다.그리고 명국 또한 길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안다. 일기를 봐야겠지.요즘은 어렵다.물이 너무 차니까.봄이나 오면…명국은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다.주르륵 눈물이 흘러 목침 위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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