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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확립·행정개조 “시동”(변화몰고 오는 「이총리 바람」: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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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든 업무 나를 거쳐 청와대로”/야에 정책 미리 알려 대안 유도/부처이기주의 직접 나서 조정·통제
국민의 특별한 시선속에 이회창 국무총리가 취임한지 20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20일간의 짧은기간에도 이 총리는 예상대로 그 특유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것저것 바꾸기 시작했다.
그가 보여주는 변화는 크게 두가지 흐름이다. 하나는 총리 위상확보고 다른 하나는 신사고적 접근이다. 그동안 그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과거총리는 대부분 의전·방탄총리,얼굴마담이라는 한계에 머물렀는데 이 총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내용이었다.
이 총리는 신년 TV대담에서 『헌법에는 분명히 총리가 행정각부를 통합하여 국정을 운영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지적하고 『나는 그대로 해보려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총리 바로서기」를 선언한 것이다. 이 총리는 지난해 12월29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부처간 이견조정은 총리가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했으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맡은바 업무를 적극적으로 하는게 내 철학』이라고 확실히 밝혔다.
그는 총괄조정의 첫 작품으로 포탄수입 사기사건에 대해 검찰·군합동수사본부 설치를 지시했다. 김영삼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그의 지시 어조는 명확하고 강력했다.
이 총리의 참모들은 『각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를 비롯,앞으로 장관의 주요업무가 총리를 건너뛰고 직접 청와대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총리는 또 정부업무의 신사고를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총리실의 고위관계자는 4일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총리는 관료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행정에 대해 새로운 사고로 다가서고 있다. 많은 대목에서 재검토를 지시하고 있다.』
첫번째 예가 우루과이라운드·행정규제완화대책의 개선이다. 이 총리는 『정책을 만드는 쪽에서 생각하지말고 그 대상이 되는 농민·민간쪽에서 다시한번 들여다 보자』고 주문했다. 이 총리는 총리직속의 농업대책위 위원 9명중 농민대표 2명이 위원으로 위축됐으나 농민들이 수가 적다고 하자 3∼4명으로 늘리도록 지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련부처는 「93년형 물건」을 다시 고치고 있다.
둘째는 대야관계다. 이 총리는 김종필대표 등 민자당 지도부와 가진 고위당정회의에서도 『앞으로는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정부정책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설명해 야당의 정부이해도를 높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각은 총리·장관·실무국장 등 여러 차원에서 야당과 접촉해 정부의 「집안 일」을 알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 총리는 『국가의 총체적 단결이 필요한 국제화시대에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건설적인 대안제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협조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총리는 부처이기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선보였다. 과거에는 『부처가 고집을 버리고 바뀌어야한다』는 해법이 주조였다. 그러나 이 총리는 『부처의 이기적 본능을 통제하는데는 총리실의 조정·통제가 더욱 효과적』이라고 참모들에게 설명했다고 한 측근은 소개했다.
변화의 바람이 빠뜨리지 않은 곳은 총리실의 인적 개선이었다. 이 총리는 과거보다는 파격적인 내부승진원칙으로 인물을 교체했다. 이흥주 총리비서실장을 비롯,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제1행정조정관·정무비서관 승진자 등이 모두 총리실 사람이다.
이 총리는 변화의 바람을 몰고 있다. 그러나 이 바람이 정부·관료사회의 두터운 방벽을 얼마나 뚫어낼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이 총리는 신년 TV 대담이후 신문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다. 『일로 뭔가를 보여줘야지 말이 무슨 소용있겠느냐』는 생각에서라고 측근들은 설명하고 있다.
공직자들의 기강확립문제에서도 『적발이나 징계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직자들의 기본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줘야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총리는 현재 김 대통령의 신임,대중적 인기,그리고 언론의 호평이라는 안락한 환경에 놓여있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평가란 항상 잔혹하리만큼 냉정한 것이어서 언제 박수가 화살로 바뀔지 모른다. 법조·선관위·감사원에서 역대 총리를 지켜보면서 이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신임 재상이 앞으로 어떤 구체적 신풍과 경륜으로 국정을 쇄신해 나갈지가 관심사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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