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창설이래 최대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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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공수사권마저 축소 “의기소침”/“30년 업보…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
남산(안기부)에 고통의 삭풍이 불고 있다. 안기부가 국회와 감사원에 둘러싸여 매서운 추궁과 논란의 도마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안기부 사람들은 「정보부 창설이래 최대의 수난기」라면서 움츠린다. 남산에서 보면 수난이지만 바깥에서 보면 「정상화」나 「시련」이다.
안기부는 지난 7월 평화의 댐과 관련,감사원의 조사를 받았다. 시련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최근처럼 강한 칼날이 깊숙하게 들어올 줄은 몰랐다.
안기부가 더욱 아픈 것은 수사권 논란이다. 다른 사정도 얽혀 있지만 「수사권」이 주불씨가 되어 국회의 날치기 파동을 야기했다.
○…이런 사면초가에 몰린 안기부 직원들은 의기소침해 있다고 한다. 『야당이 해도 너무 한다』고 항변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다수는 『지난 30년의 업보며 한번은 치러야할 열병』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몇몇 책임있는 관계자들은 전했다.
안기부의 수사권을 대폭 줄이려는 민주당의 공세가 치열해질 때 실무 간부진은 수사권 고수를 김덕부장 등 지휘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예를들어 『야당 요구중 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허위사실 유포죄에 대한 수사권만 없애도 대공 수사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내용들이었다.
지휘부는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문민정부의 첫 국회라는 상징성이 더욱 크고 중요하니 양보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설득했다고 한 고위관계자는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박관용 비서실장 등 청와대측의 의지가 막판에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은 그 정도론 어림없다고 버티고 있지만 안기부는 이 선이 마지노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부법 개정의 실무책임자인 조만후 안기부장 법률특보는 4일 『문민정부의 안기부는 정치개입 부서를 없애는 등 진짜 변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으로부터 우리의 체제를 방어하는데 필요한 기능까지 없애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복 사건감사는 안기부에 부끄럽고 자괴스러운 기록이 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객관적인 기관에서 진상을 규명하면 우리도 오히려 떳떳해질 수 있다』며 태연해하지만 내심은 무척 씁쓸한 모양이다.
○…반발·억울함·좌절·수치감이 섞인 가운데서도 안기부 사람들은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고 한 고위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안기부는 지난 30년간 정권유지의 도구로 온갖 악역을 다해왔다. 그러니 지금의 시련은 오히려 당연히 치러야할 업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동료들은 정말 이런 홍역을 거쳐 자식·친구 보기에 자랑스러운 안기부 요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안기부가 정말 이 시련을 딛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보기관으로 대변신할지가 관심사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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