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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론」이 이긴 검찰권행사/권영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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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타협수사가 옳은가,아니면 진실·형평에 충실한 원칙수사가 옳은가.』
대검 중앙수사부가 김승연회장(41) 구속을 결정하기까지 검찰 수뇌부들은 바람직한 검찰권 행사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토론배경에는 최근 검찰간부 모두가 읽었다는 『요시나가 유스케(길영우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글이 한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잡지 『문예춘추』 12월호에 실린 이 글은 검찰권 행사방향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해온 일본의 전 검사총장과 현 검찰간부에 관한 이야기.
이 글에서 소개된 원칙론자는 13년8개월여나 동경지검 특수부에 근무해 「수사의 신」이란 애칭을 갖고 신임 검사총장에 내정된 요시나가 동경고등검사장. 올해 동경고검장에 취임하자마자 「제네콘 오직사건」을 수사토록 해 기업 비자금의 뇌물루트 추적에 나섬으로써 일본정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인물이다.
이에비해 탄력적 검찰권 행사를 주장한 타협론자는 재임시 매끄러운 검찰지휘로 「미스터 검찰」이란 찬사를 받았던 이토(이등론) 전 검사총장.
이 글은 이토 전 총장이 회고록 「추상영일」에서 고백한 경찰의 공산당간부 도청사건을 인용,검찰과 경찰의 마찰을 피해 기소자를 내지않고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은 「타협론」을 소개하고 있다.
반면 요시나가는 『검찰수사가 결과적으로 정치·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는 원칙론을 내세우는 수사검사로 묘사됐다.
이 글은 두갈래 검찰권 행사 방향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는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해놓고 있다.
김 회장 구속후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대기업 총수라는 신분 때문에 처리방법에 이견이 많았지만 결국 요시나가가 이토를 이긴 셈』이라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일본에서도 검찰권 행사를 놓고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는만큼 우리의 현실상 어느 한쪽을 검찰의 지표로 삼을수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바람직한 방법은 원칙론과 타협론의 장점을 살려 사심없이 탄력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회장 사건은 일단 「법대로」의 원칙론이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앞으로 검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수사에서 계속 이같은 자세를 유지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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