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쌀개방 어떻게 대비했나/농업경쟁력 높이기 총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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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농규모 확대·맛좋은 쌀개발도 서둘러/각계 지도급 인사들이 앞장서 여론계도
일본 아사히(조일) TV는 지난 25일 0시부터 5시간에 걸쳐 쌀수입문제에 관한 심야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쌀시장 개방론자와 반대론자가 나와 서로 자기 주장을 펴는 한편 수시로 시청자 상대의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이 끝나갈 때쯤 되자 쌀시장 개방론을 약간 앞서던 반대여론이 수세로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찬성여론 48%,반대여론 47%로 쌀시장 개방론이 우세한 가운데 토론이 끝났다.
한국보다는 쌀에 대한 의존도가 약하지만 쌀을 중요시하기는 마찬가지인 일본의 여론이 이처럼 쌀시장 개방을 용인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 것은 정치가·학자·관리 등 일본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들의 꾸준한 여론계도 결과다. 이들은 쌀시장 개방문제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인식아래 ▲국민계도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쌀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교섭추진 ▲신농업정책 ▲맛좋은 쌀개발 등 대책을 은밀히 추진해왔다. 그 결과 쌀시장 개방이 사실상 결정됐는데도 일반국민들이나 농민들은 큰 충격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신생당 대표간사,하타 쓰토무(우전자) 외상 등 인기있는 정치인들도 쌀시장 개방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역설해왔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총리도 기본적으로 쌀시장 개방론자다.
한편 외무성·농림수산성 관리들이 제네바·미국 등지에서 외교교섭을 통한 쌀시장 개방조건 투쟁을 벌였다. 일본은 ▲쌀관세화 6년 유예 ▲6년후 관세화문제 재검토 ▲유예기간중 일 국내 소비량의 4∼8% 수입 등에 대해 미국과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루과이라운드가 전체적으로 타결될 경우 쌀문제가 마지막 장애물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대외적으로 이같은 교섭을 벌이는 한편 규모의 경제·경비절감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장기적 영농정책 수립과 맛좋은 쌀개방에도 힘을 기울여왔다. 개방해도 농촌이 가격과 품질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새로운 식료,농업·농촌정책의 방향」이라는 신농업정책을 발표했다.
채산이 맞는 영농전문회사를 육성하고,일반회사처럼 농업종사자가 출퇴근할 수 있게 하거나 휴가를 갈 수 있게 함으로써 젊은이들의 농촌 이탈을 막는 등 여러가지 방안이 도입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쌀농사 규모확대 및 법인화,쌀농사가 어려운 지역의 대책 등을 줄거리로 한 농업강화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안은 쌀시장이 개방될 경우 쌀농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모확대가 절대적이라는 전제하에 영농규모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 10년간 1백75만㏊를 목표로 농지를 대규모 농가·영농법인에 이전시켜 경지면적 10㏊ 이상을 경작하는 농가나 법인이 전체농지의 80% 이상을 가지게 하겠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를 위해 도도부현의 농업공사 등 농지은행은 영세농 및 이농 농가로부터 농지를 모아 농사에 뜻이 있는 농가나 대규모 영농법인에 집중시킬 계획이다.
일본정부는 이와함께 쌀가격을 점차 시장가격에 맡기는 쪽으로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한편 수매가격을 인하내지 동결해 국제가격과의 차이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일본 TV에는 「미인을 길러내는 아키타쌀」 「농약을 쓰지 않는 홋카이도 쌀」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씻었습니다」 「레인지에 5분이면 만사 OK」 등의 선전이 곧잘 눈에 띈다. 머지않아 쌀수입이 임박할 것으로 보고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에 따라 품질개발과 쌀가공 방법을 개발,적극적인 판촉에 나선 것이다. 쇠고기시장이 개방됐지만 낙농산업이 전멸하지 않은 것처럼 쌀도 맛으로 대항하겠다는 것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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