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풀어가야 하나(쌀개방 비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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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맺고 끊음」이 없다/대세 수용하느냐,마느냐 결단 내릴 때/“악역 누가 맡나” 말도 못꺼내고 속앓이
드높은 우루과이라운드(UR) 파고에 농촌과 정치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거의 7년을 끌어온 UR협상은 이제 우리에게 마지막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농민은 물론 전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열린 경제속의 쌀시장 개방문제」를 세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타결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고 농민들의 우려와 불만의 소리가 거세지고 있으나 「쌀개방 절대불가」의 기치를 내걸고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대응자세와 전략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장 푸시 프랑스 농업부장관은 최근 유력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농산물 보조금에 대한 미국·프랑스간의 시각차가 좁혀졌다고 언급함으로써 UR의 최대걸림돌이 되어왔던 미국과 유럽공동체(EC)의 농산물 협상이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일본도 UR 타결 시한인 다음달 15일 직전에 쌀시장 개방에 대한 공식발표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UR는 미국·EC·일본 등 강대국들의 「밀실 흥정」에 의해 7년간 끌어온 협상에 종지부를 찍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대세를 받아들이느냐,아니면 거부하느냐 하는 막바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예컨대 일본처럼 「불가피론」을 내세워 쌀시장을 개방하든가,세계 13위의 무역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관세 및 무역일반협정(GATT)에서 탈퇴하든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정도로 막다른 골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 정책담당자들은 『쌀시장은 관세화는 물론 최소시장 접근도 허용할 수 없다는 정부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농림수산부는 쌀뿐만 아니라 쇠고기·보리·고추 등 3개 기초 농산물도 개방이 되지 않도록 「협상력을 발휘하겠다」는 한가한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상황이 긴박한데도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거론을 꺼리고 있다』고 현재의 정부 부처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시장을 열 경우와 열지 않을 경우의 득실과 이에 대한 대비책의 검토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농림수산부 관리들은 경제기획원이,경제기획원은 국무총리실이,또 국무총리실은 농림수산부나 경제기획원이 악역을 담당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듯한 표정들이다.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GATT 탈퇴라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 경우 농업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이고 국론분열은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으나 UR에 비협조적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속에 미국·EC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국들과 심각한 통상마찰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쌀시장을 열린 농가소득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추곡수매제의 폐지(보조금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와 농업기반 붕괴에 대비한,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의 농업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할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UR에 관련돼 있는 정부부처 일각에서는 최근들어 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한 의견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내놓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의 공식견해」가 아니고 「사적인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우리나라가 쌀시장을 열지 않기 위해 UR의 기본원칙인 예외없는 관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GATT체제에서 탈퇴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최악의 사태를 끝내 감수하지 못할 경우 일본(관세 유예기간 6년,최소시장접근 허용폭 4∼8%)보다 불리한 조건의 쌀시장 개방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럴바에야 차제에 쌀시장 개방협상에 나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고 UR협상에 협조했다는 명분과 개방확대에 따른 수출증대의 실리를 한꺼번에 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협상 주무부처인 농림수산부는 쌀시장 개방불가는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정부의 기본방침이라면서 미국 등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협상도 벌이기전에 시장개방을 먼저 선언하고 나서는 것은 협상전략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 및 통상관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쌀시장 개방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논의를 활성화해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우리나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여론의 컨센서스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한종범·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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