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능 40점(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옆자리 책상은 늘 비어있었다. 학기말 시험 때였던가. 당시 이미 이름깨나 날린 야구선수였던 짝의 얼굴을 처음 본게 그 때였다. 그는 스스럼없이 시험지를 받아선 이름만 적어놓고 교실을 나가곤 했다. 영어시험을 치르고 다음시간 독일어 시험을 치른뒤 그를 운동장에서 만났을 때 그 야구선수는 매우 신기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째서 이번 시험에선 영어시험을 두번씩 치르느냐』고 물었다.
영어와 독일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운동선수를 헐뜯자는 뜻에서 지난 학창시절을 회상하는게 아니다. 영어와 독일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지금 누구라고 말하면 모두가 알 그는 훌륭한 프로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이후에는 체육계의 덕망있는 지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 되었다. 야구선수였던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자 직업으로 야구를 선택했지 적어도 대학생이 되려는 꿈을 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 풍속은 어떠한가. 졸업을 앞둔 고3생 체육특기자에게 억대의 스카우트비 제공설이 나돌고 대학마다 우수특기자를 빼오기 위해 다투어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학비는 물론 면제되고 뒷돈거래도 있다는 소리다. 대학생으로서의 명예와 직업인으로서 생활비까지 한꺼번에 버는 꿩 먹고 알 먹는 풍조가 계속된지 꽤 오래 되었다. 이런 악습이 계속되니 국민대학의 현승일총장은 취임하면서 체육특기자 선발제를 아예 폐지해버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교육부도 지난해말 새 대입제도 입시요강 발표 때 특기자 선발에서의 최저 학력기준 적용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올 5월에 교육법 시행령 76조에 이를 명시했다. 5지선다형 시험에서 같은 숫자만 표기해도 받을 수 있는 점수인 「수능 40점」 이상은 돼야 한다는게 상식적인 최저선이다. 이 최소한의 점수도 받지 못하는 특기자를 과연 학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체육특기자 편일 수 밖에 없는 문체부에선 이미 스카우트가 끝난 마당에 올해는 어렵고 내년에나 적용하자고 버티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시속도 바뀌는 법인데 없어져야 할 악습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고치는게 급선무다. 이젠 대학 가는게 명예인 시절도 지났고 오히려 프로구단에 얼마를 받고 입단하느냐가 더 큰 명예인 시절을 살고 있다. 대학의 연구열과 경쟁력이 시급하다고 외쳐대는 이때에 수능 40점도 안되는,영어와 독일어의 차이를 모르는 특기자를 굳이 대학에 입학시켜야만 할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