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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찾기>김문수,숯은 숯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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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철스님의 입적(入寂)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혀진 기분이었다.텔리비전의 화면으로,신문의 지면으로 성철스님의 행적과 장례준비 상황들이 낱낱이 보도되었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조문객들의 모습도 소개되었다.또 그분이 길러낸 많은 제자들의 빼어난 수행까지도 밝혀냈다.누더기옷을 비롯한 몇점의 유품들이 소개되는가 하면 장례식 공식명칭이「종정예하 퇴옹당(退翁堂)성철대종사 종단장」으로 결정되었음도 밝혀졌다.
이영재씨의 아내 박여사가 해인사로 떠난 것은 장례식의 공식명칭이 정해졌다는 보도가 있은 다음날이었다.
박여사가 떠나기 전 이영재씨가 물었다.
『도대체 당신이 거기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어쩌긴 뭘 어째요.큰스님이 돌아가셨으니 문상가는 거죠.』 박여사는 마치 친척이나 친지의 부음을 받고 상가에 문상하러 가는 사람처럼말했다. 『허,누가 들으면 큰 스님하고 교분이 두터웠던 사람으로 알겠군.』 이영재씨가 빈정거렸다.
『텔리비전도 안 봤어요? 그 숱한 사람들이 큰스님과 교분이 두터워서 모여들었다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들이야 그만큼 불심이 두터운거지.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매사에 날 우습게보는데 나한테도 남못잖은 불심이 있다구요.』 『허 그렇던가?』『그건 그렇고,나 없는동안 좀 불편해도 참으세요.애들한테도 신경좀 쓰시구요.』 이영재씨는 대학 2학년인 딸과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들을 둔 50대 초반의 월급쟁이였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는데 나도 다 생각이 있어 가는 거예요.놀러가는 거 아니라구요.』 박여사는 다시 한번 이렇게 못박듯하고 떠났다.
박여사가 집을 비운지 사흘째 되는 날,조간에 장례식의 이모저모가 자세히 보도되었다.그 여러 보도중에 이영재씨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퇴설당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성철스님의 유품목록이었다.
퇴설당이란 곳은 성철스님이 58년 전에 머리를 깎은 곳이자 그의 마지막 처소이기도 한데 그곳에 진열된 유품은 평생을 입은누더기옷 한 벌을 비롯해 30년간 사용한 석장(錫杖),닳아빠진검정고무신,덧버선과 양말 한켤레,안경.볼펜.장 삼.가사.누렇게찌든 원고지와 노트 따위였다.
영재씨는 가난을 면치 못해 아내로부터 늘 바가지를 긁히는 형편이었으나 성철스님이 가졌던 것에 비하니 큰 부자라고 생각되었다. 『난 너무 많은 걸 가졌다구.』 이영재씨는 신문을 보면서중얼거렸다.그러면서 아내가 해인사에 간 것을 다행하게 생각했다.틀림없이 퇴설당이란 곳에도 들러 공개되는 유품들을 보고 올테니 그걸 보면서 자신의 가난함에 위안을 받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이영재씨가 그 신문을 읽고 있을 때 딸 아이가 아침상을 차려놓았다고 말했다.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벌써 식탁앞에 자리잡고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아,어서 먹자.어머니가 없어 너희들이 고생이구나.』 『난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뭣 때문에 해인사엘 가셨는지 알 수가 없더라.』 딸 아이가 쫑알거렸다.제 어미의 일을 떠맡은 불만이잔뜩 배어있는 목소리였다.
『네 엄마가 절에 열심이잖니.』 『절에 다니는 사람이 모두 해인사로 몰린다면 큰 난리가 나겠네요.』 『그렇잖아두 해인사에사람사태가 난 모양이더라.』 『사리는 얼마나 나왔대요?』 아들아이가 이영재씨에게 물었다.
『비때문에 사리수습하는게 하루 연기됐다더라.』 『그 스님의 딸이랑 부인도 다 중이 됐다면서요?』 『그렇다더라.』 『가족을돌보지 않고 중이 된 남편이랑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같은 게 그렇게 중으로 만든 게 아닐까요?』 『그럴리야 있겠느냐.불심이 깊은 탓이겠지.』 『가족을 돌봐야할 의무를 수행치 않고 중이 된다는 건 좋게 볼 수가 없잖아요?』 『학교에 늦을라.어서 먹고 가거라.우리같은 속인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지,그 세계에는.』 『난 남들이「큰스님,큰스님」하고 떠받드는 게 못마땅해요.「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도 그분이 지은 말이 아니래요.』 『나도 신문에서 읽었다.중국 송나라때 스님인 칭유안이라는 이가 한 말이라더라.하지만 남이 먼저 한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게 뭐 나쁜 거냐?』 『마치 자기가지은 말처럼….』 『보도가 그렇게 된 것이지,그분이 자기가 지어낸 말이라고 하고 다니진 않았잖니.비록 남이 먼저 한 말일지라도 그 말이 꼭 필요한 때 했다는 게 중요하지.그분이 큰스님인 것만은 사실이야.유품들을 보니까 평생을 여간 검소하게 사시지 않았더라.
해묵은일력도 그 뒷면을 사용하기 위해 모아 두셨다더라.』 이영재씨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아들 아이는 몇번이나 시계를 쳐다보았다.숟가락질도 빨라졌다.
사실 아들아이는 어머니의 공부타령과 가난타령,아버지의 검소타령에 진력이 나있었던 것이다.
***이 영재씨는 아들아이의 그 속마음을 꿰뚫고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박여사가 집에 돌아온 것은 장례집행위원회에서 사리 1차수습결과를 발표한 날 밤이었다.1차에 38과가 수습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쇄골과정이 끝나면 총 1백과가 넘는 사리가 수습될 것이라는 추측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구경은 잘 했소?』 『아니,이 양반이 정말 누가 들으면 단풍놀이라도 갔다 온줄 알겠네.』 『뭐 내 얘기가 틀린 얘긴 아니잖아.구경 중엔 제일 큰 구경이지 뭐.큰 절에 가서 큰스님 다비식 구경을 했는데,안 그래.』 『그동안 민우 걔 제대루 공불 했는지 모르겠네.』 『…….』 『민희가 조석은 제때에끓입디까?』 『걱정도 팔자네.당신이 집을 비운 게 한달이요,일년이오? 겨우 나흘이오.애들은 당신 잔소리 안 들으니까 외려 편한 눈칩디다.』 『민우가 그럽디까?』 『보아하니 눈치가 그렇더란 얘기야.』 『못된 것같으니라구.다 절 위해서 공부해라,공부해라 하는 거지.나 배부르자구 하는 소린감? 내가 제 녀석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두 모르구설람.』 『……….』 『애들까지두 에미 속을 몰라 주니….가난한 살림에 손톱 여물을 쓸어가며 남못잖게 입히구 먹이느라 애간장이 다 탔구만.』 이영재씨는 박여사의 가난타령에 속이 뒤집혔으나 가까스로 눌러 참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난 당신이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줄로 알았더니만 그것두 아니던데 뭘.』 『무슨 소리예요?』 『우유팩이니 병이니 그런 재생품들을 반찬찌꺼기랑 한데 넣어서 그거 골라내느라구 얼마나 애먹었는지 알아?』 『우유팩 모으면 떼돈이 생긴답디까? 빈병 모아 팔아서 부자된 사람이 있으면 말해봐요.나도 당장 그렇게 할테니까요.』 『허,저사람 말하는 것 보라니까.누가 그거 모아서돈벌랬어? 우리에겐 소용없는 신문지요,우유팩이요,빈 병이지만 그래야만 쓰레기 수거하는 사람이 편하구 자원이 절약되는 거 아냐.당신 그거 모르구 하는 소리야?』 이영재씨의 목소리가 점점높아졌다.그는 계속 목청을 높였다.
『성철스님 유품목록이 신문에 났는데 달력 뜯어낸 종이도 그 뒷면을 이용해 뭐 적을 게 있으면 적으려고 차곡차곡 모아뒀답디다.평생을 누더기옷 한 벌로 지냈답디다.다 닳아빠진 검정고무신한 켤레에….』 『그만해요,그만.당신 성철스님 닮으려고 돈 안벌어 들이는 거 아니잖아요.』 『이 딱한 마누라야.큰스님 다비식에 갔으면 그런 걸 보고 느끼는 게 있어야지.도대체 차비 내버리고 아까운 시간 허비하면서 뭣하러 그 먼 데를 갔다온 거야?』 이영재씨의 힐난에도 박여사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내가 차비랑 시간만 허비했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그렇잖아.』 『좋아요.내 이거 보여 드리지요.』 박여사는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냈다.그녀가 꺼낸 것은 흰 종이에 싼것이었다.
『이게 뭔지 아세요?』 『……』 『내가 부처님께,돌아가신 큰스님께 얼마나 빌었는지 아세요.제발 당신 좀 높은 자리로 승진시켜 주시구,민우 대학에 합격 시켜 주시구,민희 좋은 데로 시집가게 해 주십사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빌었는지 아시기나 하시구 그런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저런딱한 마누라쟁이!』 『이게 뭔지나 아세요?』 박여사가 떨리는 손으로 풀어헤친 종이를 이영재씨에게 들이댔다.
『이게 큰스님 다비식에 불 땐 참나무 숯이라구요.』 『아니 숯은 왜 가져 왔어?』 『이걸 지니면 큰스님의 음덕으로 우리 민우가 대학시험에 무난히 붙는다구요.』 ***박 여사는 풀었던종이로 다시 숯을 조심스럽게 쌌다.그러고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핸드백 속에 되넣는 것이었다.
『정말 딱한 사람이네.정말 딱해!』 『딱하다니요?』 『이사람아.그건 그냥 숯일 뿐이야.성철 큰스님 흉내를 낼까?』 『……』 『숯은 숯이요,재는 재로다! 뭔 뜻인지 알아?』 이영재씨의말에 박여사는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남편의 입에서 나온「숯은숯이요,재는 재로다」와 성철스님의 법어인「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로다」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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