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일경협-정치아닌 경제논리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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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韓國으로부터 들여온 물건에 하자가 발견돼 즉시 韓國측 메이커에 클레임을 제기했다.메이커가 책임있는 자세를 안 보이자 재차 독촉을 했더니 韓國人사장이「당신이 여러 가지 트집을 잡으면서도 나와 거래하는 것은 그래도 우리 제품으로 돈벌 이가 되기때문이 아닌가」라며 오히려 대들었다.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왜 적반하장격으로 꾸짖음을 당해야 하는가.』 최근 대한무역진흥공사에 날아든 日本 T社 야마타사장의 편지내용이다.그는 韓國기업과 거래를 하려다 봉변을 당한 경험 한 토막을 소개하면서 日本시장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철저한 프로비즈니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점잖게 충고했다.
호소카와(細川)日本총리의 訪韓이후 겉으로는 양국간의 경제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나 실제 日本내에서 韓國기업과 상품을 보는 시선은 이처럼 매우 냉정하다.
최근 貿公이 韓國과 거래하고 있는 日本바이어들을 대상으로한 조사를 보면 응답업체의 57.6%가『수입선을 韓國에서 다른 나라로 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가격이 올라 메리트가없어졌고(45.5%),품질이 떨어지고(17.9% ),클레임처리가 늦고(9.8%),납기일을 제대로 지키지않기 때문(7.1%)이었다. 그뿐이 아니다.지난해 9월부터 1년동안 日本大藏省이 위조상표부착상품을 적발한 결과 韓國産이 가장 많아 우리나라는 위조상품 수출 1위국의 불명예를 안았다.
이런 판국에 호소카와총리가 다녀갔다고 상황이 금방 좋아질 리는 없다.야마타사장과 같은 경험을 해본 기업인이 있는한 韓國상품이 日本시장을 파고들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특히 우리나라는 경공업의 경우 中國과 동남아에 밀리고 중화학 공업은 日本의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하는등 샌드위치신세에 몰리고 있다.
물론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지난 2월부터 시작된 엔高로 日本기업들은 韓國으로부터 부품조달을 크게 늘리는가 하면 해외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日本기업들은 우리나라의 정치안정과 주가상승에 관심을 표하면서 투자환경이 안정돼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엔高의 효과를 소극적으로 얻는데 그치지 말고 이를본격적인 韓日經協및 對日시장진출의 계기로 삼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상전문가들은 우선 정부차원에서 아무리 경협을 유도하더라도 민간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결국 기업과 기업이 서로 이익을 남길수 있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무역거래에서 가격과 품질을 기준에 맞추지도 못하면서 日本에 무조건『사달라』고 하는 요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貿公 日本室 許祥鎭부장은『경협이나 기술이전은 정책이나 감정의차원보다 철저한 비즈니스관계로 진행돼야 한다』며『조건은 제대로갖추지 않고「너희가 과거를 생각해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아니냐」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모처럼 잡았던 기회도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품질향상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질 좋은 상품을 개발하면 가격에 관계없이 팔리게 된다는 것이다.까다롭고 요구사항이 많기로 유명한 日本시장에서 품질로 이기면 세계시장을 휩쓸 수 있기 때문에 품질향상은 더욱 중 요한 과제가되고 있다.
申德鉉 韓日經濟協會상무는『日本소비자들은 저가품의 경우 조금 흠이 있어도 싼 맛에 사지만 값이 비싸지면 상품으로서 완벽해야산다』며『韓國상품은 값이 오른 만큼 품질도 무엇인가 달라졌다는평가를 받아야 살아남을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납기일준수니 매끄러운 끝마무리등 상거래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을 잘 지켜야한다는 상식과도 같은 말이 이제는 중요한 과제가 돼버렸다.값이 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치더라도끝마무리나 포장등 순전히 기업가와 근로자의 정신 자세에 달려 있는 분야만은 꼼꼼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 프로정신 배울때 …○ 실제로 원동공사.부미상사.(주)신승산업등 최근 韓日經濟協會가 선정한 對日시장개척성공사례의대부분은 품질향상에 애쓰는 한편 납기일을 정확히 지키고 마무리손질을 철저히 하는데 노력해 성공한 기업들이었다.
기술이전에 대한 접근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日本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개발한 기술을 거저 넘겨줄리는없으므로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李吉鉉 三星物産고문은『남는 것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이 日本의생리』라며『기술을 무조건 내놓으라고 우격다짐으로 조르지 말고 필요하면 돈을 주고 사서 쓰겠다는 합리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韓日經協은「이번에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식의 감정적인 자세보다「서로 이득이 되는 길을 찾는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바람직한 것이다.
〈南潤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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