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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설경쟁의 허실/자동차 산업 더 뛰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수요폭발하는데 설비투자 부진/세계시장서 미·일 승계할 호기 놓칠판
국내 자동차산업이 올들어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설비투자 확대의 필요성과 기술경쟁력 강화,앞으로의 국제화 전략 등에 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어깨를 겨루려면 한참 더 뛰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최근 각 업체가 내놓고 있는 중장기 설비증설 계획은 우리 업계의 길게 내다보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새 공장 짓는데 2년이 넘게 걸리는 점을 감안하며 수요팽창 추세에 비해 설비투자가 한발 늦은 감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만큼 나라안팎의 수요에 대한 예측능력이 뒤떨어져 투자확대 등 경영전략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대·기아·대우자동차 등은 최근 생산능력 확충계획을 발표,완성차 업계 전체로는 2000년에 국내에서만 연산 5백11만대의 설비를 갖추는 것으로 돼 있다.
이 계획은 그러나 불과 지난해말 정부와 업계가 세계자동차 5위 생산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짜놓은 X­5프로젝트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X­5 계획의 국내 생산능력 목표는 2000년에 4백만대 수준에 머물렀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자동차산업은 30여년의 짧은 시간안에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다. 90년 생산량이 세계 10위였다가 91년에는 9위,92년에는 7위로 뛰어 올랐을 정도다.
올해에도 선진국 자동차업체들은 마이너스 성장에 감량경영으로 쩔쩔맸지만 우리 업계만은 37%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했다.
게다가 엔고로 일본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중저가 자동차시장에서 우리의 몫이 커질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고현상에 따라 일본이 소형차 생산을 후발국에 넘겨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투자확대는 늦은 감이 있다』며 『자칫 중국 쪽에 기회를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한편으로 우리 업계의 문제는 기술수준 및 품질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시장 수출이 88년 48만대에서 지난해에는 12만대로 크게 준데서 알수 있듯이 품질의 심판장인 선진국에서는 밀리고 개도국시장에서 벌충하는 양상이다.
한국 수출차종의 하나는 미국에서 소비자만족도가 89년 14위였다가 91년에는 35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산업연구원 오규창박사는 『지금까지는 복제기술로 수출했으나 앞으로는 어렵다』며 『국내 업계가 자체개발모델을 내놓고 있지만 엔진 등 핵심부품과 스타일링,첨단 전제품,자동차 하체 등의 설계능력이 아직 없어 기술개발에 온 힘을 쏟아야 선진국시장을 늘려나갈 수 있다』고 진단한다.
건국대 이재순교수(기계공학)도 『우리 업계가 조립과 수출용 테스트는 열심히 하고 있으나 엔진 등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해 경쟁력 향상에 한계를 맞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업체들은 업계간 개발협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은 서로 등을 돌리고 부품공동개발을 하지않는 것도 원가절감을 어렵게 하고 있다.
부품업체인 덕우라바의 최우상문 대표는 『일본과 달리 완성차업체 사내 모델별 또는 경쟁사간 부품규격이 달라 국가적인 중복투자 손실이 엄청나다』며 『업계간 주요 부품의 공용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부품산업의 취약성도 문제다. 종업원 5백명 이상 부품업체가 일본은 전체의 45%이나 우리는 8%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해 기술개발력이 아주 뒤떨어지는 것이다.
마키팅력도 모자란다. 미국시장에서 판매망 부족,할부금융 및 아프터서비스 미비가 문제되고 있다.
성균관대 이성렬 명예교수는 『우리 업계가 20∼30년뒤의 연료변화 상황 등에 지금부터 대처하지 않는 등 장기대책을 게을리하면 세계시장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경고했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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