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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실시3개월>6끝.정부과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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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실명제 실시 석달여가 지난 지금 정부는 일단 실명제가 순조롭게 정착되어가고 있다고 보고있다.
정부가 당초 가장 우려했던 것이 증권시장이었는데 최근의 주가는 실명제실시 당시보다 오히려 10% 가까이 올라 있다.
2단계 금리자유화에 따라 각 금융기관들이 그동안 규제돼왔던 각종 금리를 상향 조정했음에도 불구,시장 실세금리는 하향 안정세를 지키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잠잠한 상태이고 검은 돈의 해외유출 같은 것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들을 갖고 실명제에 대한 정부의「治績」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세 금리의 경우 시중에 돈이 엄청나게 풀려있는데다 기업들이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안정세」의 主요인이다. 주가는 실물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금리 안정세하에 풀린 돈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오르는 양상이다.
「주식 양도차익 非과세」라는 실명제의 규정때문에 증시는 처음부터 실명제 하에서의「탈출구」로 예견되기도 했던터다.
가명예금의 실명전환율도「차명 계좌」가 버젓이 버티고 있는 한별 의미가 없다.더욱 중요한 문제는 금리나 주가같은 지표들이 처음부터 실명제 정착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실세 금리 안정을 내세우기에는 그 밑에 숨어 있는「통화 팽창」이나「투자 위축」이 너무나 심각하다.
주가 상승을 좋아하기 보다는 여전히 불투명한 실물경기의 회복여부를 직시해야하는 시점이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요즘「新3苦」라는 新造語까지 생겨나고 있다. 매출부진,자금난,세금공세가 실명제 이후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말이다.
기업들이『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쉬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新과소비 현상이 슬금슬금 번지고 있다.
정부가 힘을 쏟아야할 일은 바로 이런 곳에 있다.
우선 실명제로 흐트러진 돈의 물꼬를 바로 잡아야 한다.
장롱 속에 감추지 않고 금융기관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노출에 대한 불안을 씻을 수 있게끔 심도 있는 비밀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금융자산이 실물자산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돈이 생산적인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금융저축에 대한 유인 수단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자율등 금융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제쪽에서의 접근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세금 혜택을 동반한 개인 연금제도가 그나마 몇 안되는 실명제 보완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이 점에서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물가.성장.투자 같은「큰 정책」들을 짜는일이다. 실명제가 실시된 마당에 경제 운용도 달라져야 함은 당연하다. 어떻게 하면 시중에 비정상적으로 풀려있는 돈을 부작용없이 거둬들일 수 있는가,기업들이 스스로 투자에 나서게 할 방안은 무엇인가,우리 경제가 실명제의 충격을 딛고도 건실한 성장을 이룰수 있게 할 방안은 무엇인가등을 궁리하는 것은 당 연히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실명제의 후속조치로서 이렇다할 적극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물가가 오르고 실질 성장이 떨어져 예산상의 歲入이 흔들리지 않을까를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도 유독 정부만이『실질 성장률은 떨어져도 물가 상승 때문에 경상 성장률은 지탱 될 터이니 세금 걷는 문제는 걱정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래서 세율을 과감히 내려 실명제 이후 경제 운용의 돌파구를재정이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되고 있으나,실명제로 모든경제 주체를 새로운「위험」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도 정부만은 적자 재정이라는「위험부담」을 지기 싫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기도하다. 실명제의 정착 여부는 실명제 이후의 단기적인 자금시장 상황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어떤「궤적」을 그리는가에 따라「사후적」으로 평가될 문제라는 것을 정부는 염두에두어야 할 것이다.
〈閔丙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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