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연에산다>1.3년전 경남고성에 정착 인제대 김열규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 □… □… □… □… □… 번잡하고 각박한 도시를 떠나자연의 품속에서 새삶을 일구는 도시인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숨막히는 도시생활의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脫도시의 자유,너그러운 자연,그 정직한 보상을 과감하게 찾아나선 도시인들의 新 歸去來辭-「자연에 산 다」를 週1회 시리즈로 엮는다.
[편집자註] …□ …□ …□ …□ …□ …□ 국문학자로「잘 나가던」西江大 金烈圭교수(59)가 3년전 벽촌인 경남고성군하일면으로 낙향했을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늘 혼자 떠돌기 좋아하는 그에게 필경 무슨 곡절이 있겠지』『長자리가 탐나 仁濟大로 옮겼대』 『급료가 파격적이라데….』이런 수군거림은 남해의 한자락이 동네 어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그의 삶터를 방문해 보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게 마련이다 .
언덕위에 위치한 하얀 2층집의 창문가득 펼쳐지는 남해의 푸른물결과 그집뒤 푸른생기를 함뿍 머금은 대나무숲길을 대하노라면 도시의 부대낌은 그야말로「10원짜리」로 느껴지기 때문.
11월에도 물이 따뜻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온 金교수를만났을 때 그는 부쩍 시골사람으로 다가서는듯 했다.
『서울에서 40년살다 변덕이 생긴게지요.60을 살면서 대추나무에 연걸리듯 인연을 잔뜩 걸어놓고 살면서 강의를 위해,책을 내기 위해 책을 읽었지요.아니 목적을 앞세워 문서를 읽었다는 것이 맞아요.아무리 읽어도 젊은 날 읽었던「적과 흑 」 「레미제라블」의 감동을 찾을 수 없었지요.나무에 걸린연을 일일이 자를 게 아니라 아예 대추나무를 옮긴것이죠.
말로만 되뇌던 자연에의 사랑을 이제 다늙어 지키게 됐으니….
』서강대 시절 방학만 되면 지리산등을 홀로 헤매던 그는 서울에서 함께 살면서 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고향에 그터를 잡았다.그이후 어머니는 곧 돌아가셨지만 곳곳에서 어머니의 숨결을 느낀다고 했다.
세살까지 살았던 그의 고향,고성읍도 여기서 멀지 않으나 40년을 서울에서 산 그에게 타향이나 다름없다.
『멍해 있는 것이 취미인 내게 이곳은 안성맞춤이요.바닷가에서멍해 앉아있기도 하고 뒷산의 자생蘭을 구경하고 지천으로 깔린 돌을 줍다보면 외로울 틈이 없어요.
열심히 책을 읽고 그 결과를 내놓으니 아직은 세상에서 물러나있다는 생각까 지는 안들어요.』이제 잡문은 그만 쓰고 필생의 테마인「한국의 신화와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욕에 충만해 있다.자연도 유난히 좋아하고 기관지가 좋지않아 겸사겸사 맑은 공기의 남해안을 자주 찾았던 그가 89년 방학동안 만이라도 기거할 집을 물색했을 때 이를 전해들은 仁濟大에서 전임제의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살면서 1년의 반이상을 감기기운으로 고생했던 그는 곧 아내를 설득,서울생활을 정리하고 1년만에 자리를 옮겨앉게 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원을 가꾸어놓았던 서울 갈현동집을 5억원에 팔아 바닷가 언덕위에 붉은 지붕을 얹은 하얀집을 지어3백평의 마당을 그림처럼 가꾸어놓았고 집뒤에 마련한 1천여평의유자밭에는 지금 노란 유자가 향기롭게 영글고 있었다 .
어촌에 농촌이기도 한 이 마을은 崔씨 집성촌으로 2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그의 뜰에는 비파와 소사,태산목과 칠엽수,치자와 능소화가 아름다움을 뽐냈고 개울을 돌아와 퐁퐁 물소리를 내는 옹달샘과 이름모를 새소리가 도시인의 찌든 마음을 씻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2시간가량을 달려 인제대 金海 캠퍼스에서 1주일에 수.목요일 이틀 강의한다.수업이 연이어 있어 수요일 밤은그곳 교수 아파트에서 잔다.나머지 닷새는 온전하게 그의 자유시간.그래도 그는 전임이다.
『인제대에서도 나는 스스로「개밥의 도토리」가 되길 마다않아요.맡은 강의 열심히 하고 이대학 교수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그것으로 내 소임을 다하겠다고 했어요.』그는 서강대에 재직하면서도 교수회의.入試출제.채점을 안하는 사람으로 이름 이 났었다.『어려서부터도 순한 아이였지만 싫은 일은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었어요.그래선지 한 친구는 나를 지독한 향락주의자라고 놀리지요.대학때 릴케의 책만을 한 1년간 미친듯이 읽으면서 릴케의 삶을 동경했습니다.릴케(독일의 시인).에 라스무스(네덜란드의 학자).브루노발터(미국의 지휘자)등은 모두 혼자의 삶을 즐긴 사람들입니다.세상사의 번잡함을 잊지못해 내가 사랑하는 새와나무와 산길을 버릴수 없다는 생각이 진해집니다.』 친구의 삶에매료돼 前한양대 姜信杓교수(57.문화인류학)역시 짐을 싸 인제대 캠퍼스로 내려왔고 前전주대 李光周교수(66.서양사)도 근처에 합류했다.이들 세 사람은 새학기에 함께 강의실에 들어가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는 그룹지도에 기 대를 걸고 있다.매월 한번씩은 고향 후배청년들을 위한 문학강연도 하고 있다.
또 멀지 않은 훗날,「오만을 버리고 무조건 기댈수 있는 곳」을 위해 매주 금요일 성당에 나가 성경공부에 빠지기도 한다.
아직「연을 끊어내는 과도기」라 가끔 서울에 들른다는 金교수는『학문에 대한 남편의 열정을 사랑한다』는 부인 정상옥씨(59),세살짜리 외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2남1녀는 서울에 있다.
[固城=高惠蓮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