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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보여야 할 일 「과거진사」/박의준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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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이렇게 솔직한 일본 사람을 처음 봤습니다. 한마디로 파격적인 일본인이지요.』
경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한 정부 당국자가 과거의 침략전쟁을 시인하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 고통받은 한국인에 대해 「진사」한 호소카와 일본 총리를 두고 한 말이다.
호소카와 총리는 일본의 역대총리와는 사뭇 달랐다. 적어도 한일간의 과거와 관련한 자세에서는 그랬다.
과거 일본 지도자들이 과거사에 사과는 하기 싫지만 양국민간에 짙게 깔려있는 양금을 고려,언급은 해야 했을 때 「통석의 념」(가슴이 매우 아프다) 등의 모호한 말로 구렁이 담넘어가듯 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김영삼대통령이 7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호소카와 총리의 솔직한 자세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실토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호소카와 총리는 나아가 『진실을 말하고 이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양국간의 진정한 우호관계는 있을 수 없다』면서 『이같은 인식이 모든 관계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일본인이 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과거사 청산에 유난히 인색한 일본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물론 호소카와 총리의 말대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했던 과거사를 생각하면 그의 사과 한마디로 아픈 상처와 맺힌 응어리가 치유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사과보다는 일본 사람들이 과거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본 총리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이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사죄만이 아니라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대한 자세를 보이고 호소카와 총리의 진솔한 자세가 일본인 전체로 확산되도록 노력하는 일일는지 모른다.
그래야만 호혜와 균등을 바탕으로 한 아태지역의 동반자로 새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억지로 사과발언을 유도해냈지 일본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있었나요』고 말하는 정부 당국자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일본 사람들이 과거사와 관련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일본이 예뻐서가 아니라 우리가 실익을 챙기기 위해서도 이제 과거사는 어느 정도 가슴에 묻어주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엄격히 말하면 과거사 특히 일제의 침략사인 소화사 정리는 유엔안보리 진출 등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본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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