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과감히실천/풀죽은 경제에 활력/청와대「신경제회의」 소집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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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자 적극유치 첨단기술 습득/규제·차별 대폭 풀어줘야 실효
김영삼대통령이 신경제추진회의를 네번째 주재하면서 그 주제를 「국제화」로 잡은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요즘 경제의 어려움도 따지고 보면 국제화에 대한 몰이해와 준비부족이 빚은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장의 밑바탕이 되는 고급기술을 체득하는데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방법은 외국의 유수기업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9억달러로 중국(5백81억달러)이나 태국(1백28억달러)과 비교할 때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청와대 회의는 「20세기말의 쇄국주의」라고 불릴 정도의 기존제도와 사고로는 더이상의 도약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며 「대전환」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른듯하다.
앞으로 정책비중을 ▲외국의 기술과 자본이 국내로 밀려들어올 수 있게 하며 ▲우리의 수출과 투자가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하는데 두겠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대전환 다짐
외국기업에 대한 토지취득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전용공단을 설치해 이들에게 「한국도 기업할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복안이다.
또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대우를 단계적으로 없애고 이들이 특히 우려하는 노사문제에도 각별한 정책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수출촉진에 큰 비중을 둔 것은 신경제 첫해의 경제운용에 있어 성장과 물가목표를 놓칠 것이 뻔하게 되자 국제수지라도 잡자는 절박한 심정이 깔려있기도 하다.
올 성장률은 4.5%대로 전망치(6%)를 크게 밑돌며,물가는 억제선(5%내)를 넘어 6%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수출지원책을 십분 가동해 국제수지 적자축소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마련한 대책을 뜯어보면 미흡한 구석이 여러군데서 발견된다.
업종 구분없이 외국인에 대한 토지취득을 모두 허용한다지만 「허가」라는 규제의 끈은 여전히 정부가 쥐고 있어 실효가 의문시 된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관련부처간 이견
한 사안이 여러 부처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아 「허가」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미국계 전자회사인 M사는 현재 휴전선 가까운 곳에 대규모 공장을 지을 계획이나 관련부처내 의견이 엇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공장이 안될 경우 M사는 중국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문제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자를 재무부가 관장하는 것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용이나 산업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를 아직도 통화 및 외자관리차원에서 재무부가 다루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민간기업에 대한 상업차관 허용문제도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금융비용 경감이 발등의 불이라고 하면서도 통화관리 부담과 물가불안을 내세운 재무부의 반대를 기획원이나 상공자원부도 꺾지 못하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나라도 몇년전부터 상업차관을 대폭 허용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다.
정부가 국제화를 위해 제도와 규정을 바꿔도 일선 행정창구가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행정규제 완화를 수없이 강조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규제완화를 여전히 실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다. 이런 점에서 획기적인 정부 조직개편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동안 관련작업을 검토한 정부는 『대규모 조직개편은 없다』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다.
외국기업·외국제품에 대한 호부호의 극단적인 인식차이도 국제화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연간 50만대 가까운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미쉐린 타이어를 달고 다니는 차를 백안시하는 풍토가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외제선호 풍조가 여전하다. 외국기업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눈도 여전히 곱지 않다.
국제화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있는 국민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국민의식이 문제
외국인 및 외국기업에 대한 이런 시선이 이들의 대한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국제화를 위한 정부차원의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행정기관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의 발상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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