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자막 엉터리 번역 투성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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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비디오영화에 엉터리 번역이 난무하고 있다.
비디오시장이 날로 커지면서 매달 2백편이 넘는 영화들이 출시되고 있으나 번역 전문가가 전무하다시피해 번역이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
극장영화의 번역문제도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으나 비디오의 경우 극장영화보다 번역자에 대한 대우가 부실한데다 조건도 안좋아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보다 비디오에서 더 자막 번역에 신경을 써야한다는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영화보다 비디오가 훨씬 많은 관객을 만나고 상품으로서의 유통기간도 더 길기 때문이다.
비디오 번역이 부실해지는 첫째 이유로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갖지 못한다는 것이 꼽힌다.
대부분의 비디오가 출시 1~2주전에야 번역에 착수하기 때문에번역자가 작품 자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또 보수가 낮아 좋은 인력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것도 큰문제가 된다.
영화 번역의 경우 현재 대략 편당 60만원에서 80만원정도의보수가 지급되는데 비해 비디오 번역은 20만원에서 30만원선에그치고 있다.
특히 비디오 번역은 대본없이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대사가 많은 영화의 경우 대본 없이 제대로 된 번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이 경우 기껏해야 줄거리를 대략 이해시키는 정도에 그치게되고 따라서 영화의 참맛은 거의 놓치게 된다.
번역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도 날림 번역에 기여(?)한다.번역자의 이름이 타이틀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무책임하고 안이한 번역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이다.
날림 번역으로 손해를 보는 대표적인 영화작가로는 우디 앨런.
데이비드 마멧등 지적인 대사를 많이 구사하는 감독들이다.
특히 앨런은 대중문화나 영화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번역자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할 때가 많다.
영화감독.소설가의 이름등 고유명사가 제대로 옮겨지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실소를 자아낸다.
잉그마르 베리만이「버그만」으로 번역되고 가르시아 마르케스를「마켓」으로 옮기는 데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영화 번역이 어학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러 나라 말이 등장하는 영화도 엉터리 번역이 나오기 십상이다. 지난해 개봉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유로파』의 경우 영어.독일어가 동시에 나오는데 독일어 대사부분이 오역이 많아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했다.전후 독일의 지하조직을 의미하는「베어볼프」를「전쟁늑대」로 직역해 관객들을 헤매게 했으며 독 일어 대화부분은 상당부분 누락시켜버렸다.
전문가들은 번역의 수준은 결국 그 나라 영화문화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줄거리만 대충 전달되면 된다는 업자들의「천민적」사고가 개선되지 않는한 좋은 번역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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