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울서 수채화 30년전 갖는 강연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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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수채화 30년을 결산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이것이 끝마침의 場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의 場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수채화에 심오한 깊이를 더함으로써 수채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열게 한 姜連均씨(52)가 수채화에 쏟아부은 서른해의 열정을 한자리에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회를 27일부터 한달간 서울동아갤러리에서 연다.
고향을 사랑하는 향토작가답게 지난달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던「수채화 30년전」은 하루평균 관람객수가 1천명을헤아릴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보름간의 전시일정을 넘기고 이틀간 연장전시해야 했을 정도다.
광주전에 이은 이번 서울전은 그로서는 두번째 마련한 서울개인전.82년 신세계미술관에서의 전시회이후 11년만에 서울관람객을만나는 셈이다.
『서울에서도,광주에서도 10여년간 개인전을 하지 않았지요.江山이 변할 정도의 긴 세월 발표회를 갖지 않는 것은 작가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화 일변도의 한국화단이 수채화는 유화로 가기 위한 길목정도로 치부해버리는데 반발,일종의 오기로 수채화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보여왔던 그는『수채화에 매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작가들과 차별성을 갖게 되는 得(?)도 보았다』며 웃 는다.
한국화단의 맥이 鮮展에서 國展으로 이어지는 공모전출신 위주로형성돼 있고 그 공모전이 유화 일변도라서 수채화가 발붙이기 어려웠다는 것.따라서 수채화는 고작해야 유화를 하는 이들의 餘技로서 명맥을 잇다 보니 자연 회화로서의 격이 유 화보다 뒤처지는 악순환을 거듭해야만 했었다는 것이 姜씨의 설명이다.그의 수채화는 바로 이같은 한계를 극복해내고 유화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위치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한국화단사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61년작인『무등산』에서 93년 최근작까지 1백여점이 전시된다.떡장사할머니에서 관능적인 누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화.소묘.풍경화와「역사적 존재로서의 화가」에 대한 인식을 담아낸 광주민주화운동 그림등이 선보인다.
『길섶에서,여행을 하며 부닥치는 사람과 풍경…오늘,이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제게 무척 감동을 줍니다.』 자신은 생리적으로 리얼리즘의 작가일 수밖에 없다는 姜씨는 편가르기식 용어인「수채화가」보다 그냥「화가」로 불리고 싶다고 말한다.
〈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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