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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세계를본다>수석지향의 병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칭찬에 인색해야 할 이유야 없겠지만 자라나는 꿈나무에 사회적過讚이나 호들갑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다 거품처럼 사라진 一過性「天才」나「神童」들은 우리 주변에서 드물지 않다.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최근 커티스음악원의 12살짜리「천재소년」의 개인교습 청탁을 받고 고심,「공연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다.우쭐함과 世波에 그 싹이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는 염려에서였다.12살짜리 한국계 바이얼리니스트 사라 張의 재능과 기교에 세계가 감탄하지만 그 재능을진정으로 아끼는 이들은「유보」도 빼놓지 않는다.20대를 넘기지못하고「지레 타버린 천재」들이 어디 한 둘인가.
어린나이로 완숙한 어른의 경지를 해 내는 경우 흔히「神童」(Prodigy)으로 불린다.그 기존의 경지를 뛰어 넘어 새로운것을 창조해 낼 때 비로소「천재」(Genius)는 탄생한다.베토벤의 바이얼린 협주곡은 50대가 되어야 제대로 연주가 가능하다는 대가들의 고백은 곰곰이 새겨 볼 만 하다.
대학졸업시즌 때마다「수석졸업자」의 명단을 언론들이 다투어 보도하는 것도 한국적 현상이다.
미국의 대입학력고사(SAT)에 최고득점자가 발표된 적이 없다. 귀하의 점수는 전체 응시자의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된다는 분포치를 결과통보때 참고삼아,그것도 과목단위로 알려주는 것이 고작이다.
「수석입학」의 개념은 아예 존재를 않는다.학위수여식때 라틴어에서 유래된「마그나 쿰 라우디」(영예의 졸업생들)또는 학교에 따라「숨마 쿰 라우디」(최고영예의 졸업생)을 뽑아 시상도 하지만「수석졸업」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고 더구나 이들 의 명단이 매스컴에 실리지도 않는다.「학내 慶事」로 접어두는 것이 관례다. 중요한 것은「사회우등생」이다.
이와 관련,최근 클린턴대통령은 소위「세상사는 지혜」(Street Smart)면에서「낙제」라고 연일 구설수다.
대통령출마를 노리는 콜린 파월 前합참의장은「C학점 학생」이었고 소프트웨어산업의 鬼才 빌 게이츠는 하버드를 중퇴했다.과찬과들뜬 기대로 어린 싹들을 짓누르지 않고 그 재능이 꽃을 피우도록 북돋우고 지켜봐 주는 사회적 인내와 금도가 절실하다는 얘기다.최근의「하버드수석 해프닝」역시 비서관에도「수석」자가 붙는,우리들「首席지향」사회의 웃지못할 한 단면이라는 점에서 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本紙전속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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