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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참여 기업인들 두마리 토끼 쫓다 잃은게 많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李昇茂의원이 社主인 鳳鳴산업.도투락의 부도를 계기로「기업인의정치참여」가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부도는「실명제이후 대기업의 첫부도」라는 차원을 떠나「이제는 집권당 국회의원이라는 프리미엄도 부도를 막는데 어떠한 힘도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는 기업풍토의 변화를 입증하고 있다. 아울러「기업인에게 정치참여는 두마리 토끼다」라는 財界의 통설처럼 기업경영과 정치활동을 병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확인시켜준 셈이다.
사실 이같은 교훈은 이번만의 일은 아니다.그동안 많은 기업인들이 정치에 이런저런 이유로 뛰어들었고 공교롭게도 한결같이 得보다 失이 많았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雙龍그룹창업자인 金成坤회장의 경우 출중한 능력과 수완으로 정치입문이후 共和黨정권 핵심에까지 갔었지만 72년 항명파동으로 정치권에서 축출당했고 이후 급작스레 타계,결국 정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29세의 장남(現 金錫元회장)이 성공적으로 기업을 승계,雙龍은 건재할 수 있었지만 이같은 경험때문인지 雙龍의 가계에는 정치에 대한 환멸속에「정치참여 절대不可」가 家訓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후 정치에 진출한 기업인들은 SK만큼의 정치적 성장을 이루기는 커녕 정치참여가 禍가돼 기업마저 사라지거나 흔들리는 사태를 당했다.
22일 오랜 은둔생활끝에 검찰에 자수한 大韓船洲의 前회장 尹錫民씨가 대표적인 경우.해운업계사상 처음으로 운임수입 3억달러를 돌파했고「정치는 또다른 기업경영」임을 내세우며 11대때 국회에 진출,國民黨부총재까지 올랐던 그였지만 87년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로 회사를 韓進해운에 강제로 인수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지나친 對정부공격과 5共정권과의 갈등때문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인데 尹회장은 이후 비자금조성으로 검찰의 수배까지 받는 수난을 겪었다.
최근 공장이 소실되고 자금과장의 횡령사건까지 겪고 있는 忠南방적의 李鍾聲회장도 尹회장과 마찬가지로 11대때 국민당부총재까지 올랐던 인물.
自由黨당시 정치에 진출,忠南도지사까지 역임했던 부친 李琦世씨의 영향으로 정치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12대때는 자신의 忠紡공장이 위치한 지역구에서마저 3위로 낙선,정계를 물러나 현재 투병중이다.
舊「토건면허」1호인 삼부토건의 창업주 趙鼎九회장도 11대국회때 국민당전국구로 정치에 진출했다가『정치는 기업인이 할 것이 못된다』며 탈당,정치에 손을 끊기도 했다.그러나 趙회장의 이같은 뜻에도 불구,그의 장남 趙南煜회장이 13대때 民自黨 전국구에 진출,2대에 걸쳐 기업인출신 국회의원이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동안 삼부토건은 잇따른 정치외도의 영향탓인지 한때 최고였던 도급순위가 이젠 하위권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또 盧泰愚대통령 총재비서실장을 지내는등 6共당시 위세를 떨치던 金鎭載의원(동일고무벨트 대표)은 新정부출범이후 아무런 당직도 맡지않고 재산공개파동만 겪었다.
이밖에 金泳三대통령이『富와 권력을 함께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게된 결정적 계기였던 鄭周永 現代그룹명예회장과 아직까지日本에 머무르고 있는 朴泰俊 前浦鐵회장은 기업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反面敎師의 역할을 지금까지도 톡톡히 하 고 있다.
〈李孝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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