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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 기초부터 다시쌓자(선진국 무엇이 다른가/현장취재: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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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록문화/사소한 것도 메모해 남긴다/단골집 음식값도 후임자에 전달/문서 안남기려는 우리와 대조적/전임자 시행착오 답습없다/구한말 대한 외교문서 고스란히/영국
선진국을 앞서 나가게 하는 기틀은 비단 첨단테크놀러지와 같은 미래지향적인 분야만이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일일이 적어놓는 「기록의 문화」와 지적유산을 소중히 보관하는 「축적의 문화」 등 과거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 역시 나라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추락하는 JAL기 속에서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기록했다는 일본인의 실례는 유명한 이야기지만 일상 사회생활에서의 기록정신도 이에 못지 않다.
일본회사에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들을 일일이 기록,후임자에게 넘겨주는 전통이 철저하다.
일본 F방송국에 근무하는 이모씨(35)는 『일본인 상사원이 업무 자체는 물론 일로 만났던 개개인의 프로필·취미·성격까지 일일이 기록한뒤 두꺼운 파일에 담아 후임자에게 넘겨주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근처의 모든 단골 음식점에 대한 평을 음식값·약도까지 곁들여 남겨놓는 것을 보곤 질려버렸습니다』고 털어놓았다.
학위받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시카고대학에서는 시험때만 되면 일본유학생들 사이에 대대로 내려오는 소위 「족보」라는게 돈다. 각 교수가 지난 수년간 낸 출제문제·해답을 한데 묶어놓은 것으로 이것만 있으면 출제경향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점수따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 유학생들은 이같은 「자료」가 매우 부실해 일본 유학생들보다 몇배의 고생을 한다.
자잘한 것까지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넘겨주는 습관이 이처럼 몸에 밴 일본인들이 우리처럼 전임자의 시행착오를 답습하는 일은 자연히 없을 수 밖에 없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인들에게는 뛰어난 「축적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성행하는 것중 하나가 조상에 대한 「뿌리찾기」다. 예컨대 3대조 조상이 언제 태어났고 직업은 무엇이었으며 언제 결혼했는지….
우리 같으면 족보를 통해 이름 정도만 알뿐 구체적인 정보를 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나 영국인들은 런던에 위치한 인구통계기록 보관소에 가면 수백년전 조상의 인적사항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런던 교외 리치먼드에 자리잡은 「공공문서보관소」.
대영제국의 모든 중요한 공문서를 영구히 보관하고 누구나 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세워진 기관이다.
「정보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정신에 다라 국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런던 근교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해 17만명의 열람객이 찾을 만큼 영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장소다.
모두 5백만점의 서류파일이 보관돼 있다는 이곳에는 심지어 구한말 우리나라와 영국 외무부 사이에 오갔던 각종 외교문서도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보관소측이 보여준 한묶음의 자료에는 대한제국 외무대신이 영국 대사에게 보낸 편지 원본이 아주 깨긋한 상태로 철해져 있었으며 편지 말미에는 「1900년 1월20일 외무대신 박제순」이라고 선명히 적혀 있었다.
다른 서가에는 6·25 당시 영국정부가 우리나라의 국내 상황과 관련,유엔과 의견을 교환한 비밀문서도 있었다.
이곳에 보존돼 있는 기록은 각종 행정서류는 물론 중요 외교문서·군사비밀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업무관련 서류로 예외없이 원본으로 보관토록 돼있다.
1086년 윌리엄 1세가 당시 원주민들의 인구·토지를 조사한 「Domesday Report」로부터 지금까지 수백년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서류는 빠짐없이 소장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서류 수집을 위해 영국의 각 공공기관에는 「기록처리규정집」이 배포돼 세밀한 기준에 따라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먼저 보관 가치가 있는 문서를 분류한다.
1단계 분류가 끝나면 영국 전역에서 모든 기록이 이곳 문서보관소로 옮겨져 12명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일일이 중요성을 판단,보관기간을 정하고 불필요한 서류는 폐기한다.
두차례 심사를 통과한 모든 서류는 자세한 분류방식에 따라 나눠진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원칙적으로 30년이 지나면 모두 일반에 공개토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군사비밀의 경우 75년,개인적인 비밀은 50∼70년,영국 왕실과 관련된 자료는 1백년이 지나야 일반인이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다』고 이곳의 책임자 캘빈 스미스씨는 설명했다.
최근 영국정부는 30년이 지나지 않더라도 가능한한 빨리 국민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토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경우 1808년 나폴레옹 황제에 의해 건립된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서(CARAN)가 파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역시 「공개의 원칙」과 「문서집중의 원칙」에 충실,영국의 문서보관소와 유사한 시스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이하다면 프랑스의 정보통신서비스 MINITEL에 연결돼 집에서 컴퓨터로 필요한 자료를 열람하겠다고 신청하면 지정된 시간에 맞춰 필요한 자료가 준비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사회적 모순이 기록의 축적에도 폐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가급적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합니다. 문서로 남길 경우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라는 한 공무원의 자조섞인 설명은 우리의 기록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선진국은 「기록의 축적없이는 발전이 없다」는 당연한 원칙에 충실,중요사안은 물론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하고 이를 사회 전체의 중요한 자산으로 보존토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놓고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팀으로 국민 모두 국가의 정보를 공유,정책의 원리를 이해하고 사회 전체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 또다른 사회간접자본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정권 바뀔 때마다 핵심자료 증발 잦아/「정부기록」 이용 영국의 1%도 못미쳐
우리 국민들이 기록에 무심한 것은 일일이 예를 들지 않아도 스스로 알 정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정책과 관련된 청와대의 기록이 항상 증발해 정책의 연속성이 끊기는 것은 물론 새로 들어간 비서진들이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받아 애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선진국처럼 총무처 산하에 「정부기록보존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여서 이용면에서 보면 유명무실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하루 불과 30여명,연간 1천여명만이 서울의 정부기록보존소를 이용하고 있어 연간 17만명이 드나드는 영국의 정부문서보관소와 비교하면 이용자수는 1백분의 1도 안된다.
보존소는 서울 정부종합청사 부근에 본부를,부산 거제동에 부산지소를 두고 모두 30만여건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으나 그나마 안기부·국방부 등의 문서는 없는 실정이다.
본격적으로 문서를 보관하기 시작한 것은 연건평 4천여평의 부산지소가 개설된 84년부터여서 그 이전의 자료는 빠진 것이 많은 상태다.
또 관계 공무원들의 비협조로 정치변혁기 등 특정기간의 중요문서가 접수 안된 경우가 많으며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중요한 기록중 빠진 것이 많다는게 보존소측의 설명이다.
예컨대 80년 신군부에 의해 모든 국가행정이 결정될 당시 국보위 관련 서류는 거의 찾을 수 없다는 것.
중국의 경우 공무원이 문서를 제대로 보관치 않을 경우 처벌받도록 돼 있으나 우리는 뚜렷한 제재조항이 법으로 명시돼있지 않아 중요한 문서를 마음대로 없애버려도 효과적으로 응징하지 못하게 돼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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