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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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3.가을 다음 해 구월(21)남자가 차를 뒤로 조금 뺐다가 광장 저쪽을 향해 방향을 틀자,개는 차창을 부술듯이 발로 차다가 컹컹 짖으며 주저앉는다.남자는 멈칫거리지 않고 그대로 광장옆 공원을 지나 도로와 도로 사이 화단을 지나 차량 속에 섞여버린다. 남자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쯤 은서는 차창 밖에 서서 차창 안의 개를 바라봤다.개는 차창에 발과 얼굴을 대고 하염없이 남자가 사라져버린 쪽을 보고 있다.은서는 다가가서 개의 얼굴이 비벼지고 있는 유리에 손바닥을 펴 대 봤다.개는 남자가 사라진 쪽에 눈빛을 주며 가만 있다.은서는 약간구부리고 앉아서 개의 눈에 손바닥을 맞춰 흔들어 본다.그래도 개는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가만 있다.은서가 창문을 주먹을 쥐고 콩콩 두드려도 개의 시선은 옮겨 지질 않는다.은서는 개가 안쓰러워져서 개가 얼굴을 대고 앉아 있는 반대편 차 문을 열고 들어가 개를 차창에서 떼어낸다.아무런 힘도 없는지 개는 별 저항없이 은서의 팔에 안긴다.
화연의 죽음을 지켜본 건 너였지.은서는 개를 무릎에 내려놓고개의 얼굴을 자신의 배 근처에 묻게 해주고 등을 쓰다듬는다.그남자도 아니고 나도 아닌 너였어.
은서는 고개를 숙여 개의 눈을 들여다본다.은서의 시선과 부딪친 개의 검은 동공이 허둥거린다.너는 화연의 무얼 봤니? 은서는 허둥거리는 개의 눈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그녀가 맨 마지막에 뭐라고 했니? 결혼을 한다구? 은서는 문득 차량 속으로 사라져간 남자가 제가 결혼을 합니다,했던 말을 떠올리며 슬몃 웃는다. 어느 날 화연은 말했었다.
우리는 결혼했어.열여덟살 때 우리 둘이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새벽이 될때까지 걷고 있는데,저만큼 성당이 보이지 않겠어.처음엔 그저 문이 열려져 있어서 들어갔지.유치원이 딸려 있는 성당이었나 봐.시소가 있길래 타보려고 그는 저쪽에 나는 이쪽에 앉았는데 내몸이 터무니없이 가벼워서 나는 허공에 떠있었지.그렇게 허공에 떠 있는데 그가 맞은편에서 뭔가를 가리키잖아.허공에떠서 돌아다보니까 성모 마리아상이었어.그는 내게로 와서 나를 시소에서 내리게 하더니 그 앞으로 데리고 갔어.새벽빛이 밝아오는 푸르스름한 빛속에서 그가 말했지.우리 이 앞에서 결혼하자,지금. 그녀는 남자가 남겨놓은 개의 등을 쓰다듬으며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가만 차안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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