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게 혼낸 후엔 토닥토닥 달래라

중앙일보

입력

야단이라고 다 같은 야단이 아니다. 아이에게 보약이 되는 야단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야단은 독이 되기도 한다. 재테크·공부기술 이상으로 꾸짖는 데도 하이테크가 필요하다. 어떻게 야단쳐야 아이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까. ‘아빠 변신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

아이 말에 껌뻑 죽는 아빠
엄부자모(嚴父慈母)란 말은 세상물정 모르는 얘기다. 엄하기는 커녕 아이 말이라면 껌뻑 죽는 아빠가 적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의존적이면서도 버릇없기 십상이다. 집안 우두머리인 아빠가 오냐 오냐 하다보니 무서운 게 없다.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늘 아빠의 권위에 기댄 탓에 스스로의 문제 해결력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땐 자신이 잘난 줄 알지만 성장할수록 움츠러든다. 밖에서도 대장 노릇하려다 반박 당해 위축되기 일쑤다. 자상함은 바람직하지만 지나치면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아빠 꾸지람은 뭔가 다르다
엄마의 야단은 감정이 앞서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잘못했어요” 라고 말해도 진짜 뉘우쳤는지 자꾸 확인하게 된다. 이는 아이의 마음을 오히려 상하게 한다.

하지만 아빠는 간략하면서도 단호하게 잘못된 행동만을 지적한다. 남성의 특징인 절제된 표현이 아이를 꾸지람할 때 장점으로 발휘된다. 아빠들의 목표 지향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사고가 아이의 양심과 책임감을 믿어주는 행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톤이 낮으면서도 강한 목소리로 야단치면 아이는 긴장하게 된다. 적당한 긴장감은 사회화를 돕는다. 아빠에게 전혀 야단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공부나 대인관계에 흥미를 잃는 등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훈육 받은 경험의 부재가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하는 신경세포 발달을 저해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노르에피네프린이 만들어지려면 도파민이란 신경전달 물질이 필요한데 이 도파민은 놀이나 흥미 있는 행위를 할 때 분비된다.
칭찬하고 놀아줄 때가 있고 엄하게 다스려야 할 때가 있음을 명심하라.

'따라 말하기'를 활용해야
잘 야단치려면 소리 지르거나 화내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싶어 한다. 잔소리를 자주 들으면 반발심이 생기고 오히려 부모의 말과 반대로 행동한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이렇게 해!’라고 엄포를 놓지 말고 아이의 행동·의도·감정·사고를 추론하는 과정인, 일명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기’를 활용해 보자.

아이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함으로써 아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태를 볼 수 있게 한다. 가령 아이가 “누나가 먼저 때렸어요”라고 한다면 “누나가 먼저 때렸구나”라고 말하면서 아이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도와 감정을 헤아린다. 이 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되 대화를 통해 제멋대로 해선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주어야 한다.
 
미운 감정 실으면 안돼
자식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길 원한다. 아버지와 부딪히면 좌절하고, 점차 냉담해질 수 있다. 아이에게 ‘못난 놈’ 따위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삼가고 혼낸 후엔 안아주거나 어깨를 토닥여준다. “벌 받을 때 힘들었지. 참 잘 견뎠어”라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하자. 역시 내 아들 기특하구나”라고 말해준다. ‘잘못을 반성하면 그만큼 좋은 점이 있구나’하고 아이가 바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아버지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후 정신과의원 원장은 “아이를 혼낼 땐 잘못된 점만 보고 미운 감정을 싣지 말라”고 조언한다. 연령에 따라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만 나무라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의 관점에서 야단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리미엄 고영림 기자 kohkoh@joongang.co.kr
도움말=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김병후 정신과의원 원장

야단칠 땐 이렇게…

l 생각의 의자를 만든다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그릇된 행동을 할 때 의자 하나를 ‘생각의 의자’로 이름 붙이고 활용해보자. 우선 ‘타임아웃’ 시간을 정한다. 보통 나이의 두 배수(5살이라면 10분)로 한다. 이때 정한대로 반성의 시간을 꼭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의 말을 따르겠다고 하면 해제시켜 준다. 벌은 규칙을 어긴 결과이며,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알려준다.

l 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다 
“너 또 말 안 들으면 그땐 그냥 안둬!”가 아니라 “앞으로 컴퓨터를 1시간만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면 그때는 일주일 동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라고 말해야 한다.

l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할 규칙을 만든다
규칙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야단 맞을지 예측 가능하게 해 준다. 위반 때 받게 되는 벌에 대한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형제간에 서로 때리면 안 된다’라는 규칙을 만들어라. “동생이니 그럴 수 있지” “얘가 먼저 때렸어요” 등 싸움 원인 제공자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l 객관적인 태도로 야단친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벌칙을 받게 되는지 분명히 설명하되 화를 내선 안된다.
아빠가 화를 내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기보다 ‘아빠가 화가 나서 나를 야단친다’고 받아들인다.

l 아이 태도에 말려들어 감정이 격해져선 안된다
아이는 잘못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려고 깐죽거리거나 말꼬리를 잡으며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여기에 말려들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결국 아빠가 이유없이 화를 낸 셈이 된다.

l 아이의 잘못을 되씹지 말고, 깨끗하게 정리한다 
일단 벌을 주었으면 뒤끝이 없어야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즐겁게 지내야 벌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l 아이의 반응이 평소보다 격하거나 의기소침하다면 야단치는 것을 보류하라.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어떤 걱정거리나 스트레스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차분한 대화로 숨은 고민을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