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이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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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 추석연휴기간은 비교적 평온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무려 1백30여명이나 길위에서 비명에 가고 4천여명이 다쳤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라해서 평온했다고 한다니 인명인플레라는 생각도 든다. 사고원인이 과속·차선위반·안전거리 미확보 순이라니 고향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바심을 낸 것이 비명횡사를 부른 것이다.
평소엔 2시간이면 충분했던 거리가 10여시간씩 걸리더라도,그래서 한가위 보름달을 비록 차속에서 맞을지라도 이 다음부터는 마음에 여유를 갖고 길을 나설일이다.
도시에서 시골 고향으로 향할 때는 선물꾸러미에 부모·친지 찾아 뵐 설렘까지 실었겠지만 막상 고향집에서는 냉해로 한해농사를 시원찮게 거둬들인 시름을 나눠안고 돌아왔으리라. 번쩍 눈에 뛸 자가용 승용차 몰고 가 폼좀 잡아보겠다던 사람들이 농촌의 시름에서 도시의 과소비풍조가 얼마나 분수 모르는 허구인가를 깨달았다면 그 또한 정신적인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당국의 추산으로는 이번 연휴에 2천6백만명의 민족 대이동이 있으리라 했다. 개중에는 고향을 찾는 이들도 있겠지만 교통혼잡을 핑계대고 관광을 즐긴 사람도 적지않을 것이다. 아예 차례상을 관광지 호텔이나 콘도에다 차려놓고 제사를 모신 사람들도 있었다고 들린다. 자손 덕분에 생시에는 못해 본 여행을 죽은 혼령이나마 호강시킨다는 우스개 같은 시각도 있긴 하다. 그러나 차례란 산사람들의 사자를 추모하는 정성이고 가족·친지가 함께 모여 우의을 다지는 기회라는 현실적 의의와도 동떨어진 짓이다.
연휴를 집에서만 보낸 사람들에겐 소일거리가 TV밖에 없었다. 밤엔 대형외화 등 그럭저럭 볼만했는데 낮프로는 시덥잖은 시간때우기 프로 일색이었다는 불평이다. 그래서 동네 비디오가게가 성시였다니 그러다간 TV시청자를 비디오에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방송도 좀 더 분발해야할 것이다.
추석연휴도 이젠 끝났다. 휴식이란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위한 힘의 재충전이다. 이제 명절기분을 일신하고 직장과 일터로 돌아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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