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3.가을 다음 해 구월(14)은서는 손을 뻗어 자동판매기 속에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꺼낸다.세 잔을 어떻게 다 들고 가지? 은서는 먼저 두 잔을 들고 손가락을 뻗어 한 잔을 걸치듯이 해보다가 다시 내려놓고 맨 처음에 빼낸 커피를 입술에 댔다.내건 마시고 가지 뭐.
종이컵을 들고 자동판매기 옆 벽에 기대는데 입술 안 살갗이 쓰리다.잠을 못잔 다음날의 커피는 늘 이렇다.쓰린데도 은서는 한 모금 더 마신다.
일이 재미있어서 그렇게 일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니다.그래 그건 아니다.완이 가고 화연이 또 그렇게 간 다음 은서는 일에 빠져있지 않은 시간들을 은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를 몰랐다.
어김없이 밀려오는 나날들이 불안했다.
커피는 입안 살갗을 쓰라리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오른쪽 맨 끝 어금니의 신경을 건드렸는지 이젠 그쪽이 아리다.치과엘 가봐야지,그래,그래야 한다.
은서는 반도 못 마신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자동판매기 위에 올려놓고 두 잔의 커피를 들고서 다시 7스튜디오 앞에 섰다.
성우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은서가 문을 열자,황피디는 성우인가,기대를 가지고 돌아봤다가 은서이자,어깨를 흠칫했다가 펴보인다. 『전화 한번 넣어 보지 그래요? 무슨 사정이 있나 보죠.
』 『전화도 안 넣어보고 이렇게 기다리겠어요,아무렴.』 황피디와 엔지니어에게 종이 커피를 한 잔씩 나눠주고 은서는 가방을 들었다. 『왜 가려구요?』 『라디오국에 좀 들렀다 올게요.』 은서가 돌아서는데 황피디가 은서씨,하고 부른다.은서가 왜요?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자,황피디는 커피를 마시며 들여다보고 있던원고를 덮고는 웃는다.
『다시 안 들러도 돼요.그냥 집으로 가요.여기 있음 뭐해? 방송으로 나가는 날 보면 되지… 수고했어요.』 은서는 목례를 하고는 7스튜디오를 나와 라디오국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는데 이의 통증이 가라앉는게 아니라 강해진다.
뺨까지 얼얼해와 은서는 엘리베이터가 와서 멎었는데도 탈 생각을못하고 통증에 붙잡혀 서 있다.
치과에 가야지.그래 그래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